
어제부터 저는 무얼 하고 있는가! 네, 글을 쓰고 있습니다. 사실 그전부터 이건 써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주체성에 대한 글들은, 뭐, 하늘의 별만큼 많겠죠. 그런데도 이상하게, 제가 생각하는 주체성, 혹은 상상하는 주체성과 맞닿은 글은 잘 보이지 않았어요. 주체성이라고 하면, 변화하지만—그럼에도 어딘가 단단한 느낌이 들잖아요? 그렇다면, 단단하지 않다면 그건 잘못된 걸까요? 사실 주체성, 혹은 인간성 같은 말들은 말이 정말 많고, 한때 거대한 바람처럼 지나갔던 주제이기도 하고, 또 철학적으로는 ‘존재’랑도 이어질 수 있는 문제이기도 해서—쓰는 데 좀 위험이 크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그동안 연구해왔던 ‘일기’와 ‘파편성’, 그리고 ‘분위기적인 형태’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결국 한 번은 이 얘기를, 글로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이걸 길게 쓸 수 있는 금전적,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좋겠지만요. 그게 늘 문제죠?

아무튼, 어제 하루종일 썼던 것은 대략적으로 일기에 대한 고정관념을 흔들어보는 작업이었습니다. 일기의 기원이라든가, 기록이라는 형식에 대해서 잠깐 이야기하고, 블랑숏를 통해 ‘이야기’라는 구조로 넘어가고, 다시 그것을 주체와 서사에 이어붙여봤어요. 논리적으로는 제 머릿속에서 나름 잘 연결되었는데, 남들이 보기엔 이게 어떻게 읽힐지, 잘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이 글을 쓰면서 일기라는 주제와 분위기라는 감각이 생각보다 견고하게 엮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느낌이 들어서, 그건 조금 기분 좋았습니다. 들뢰즈는 여전히 제 글 속 어딘가에 상주하고 있고, 새로 들어온 얼굴들은 아감벤, 바슐라르, 그리고 시몽동이에요. 다들 커다란 이름들이라 과연 내가 이걸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불러와도 되나 싶긴 하지만… 저는, 일기의 단편적 경험과 주체를 상상력, 창의력과 엮어보고 싶고, 그걸 다시 분위기라는 감각으로 변형시키고 싶은 거예요. 그러면 바슐라르를 글의 시작에서 살짝 언급하고, 마지막에 다시 그에게로 돌아가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공기와 창의력, 그리고 분위기. 바슐라르에게서 출발해서 바슐라르에게로 끝나는 것이 지금 제 글의 흐름과 잘 어울릴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