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처럼 나오는 이야기 중에, 그룹 작업에서 나오는 말도 안되는 이야기들을 종종 들을때가 있다. 기간이 정해져 있는 작업의 경우 발표날까지 사라져 버리는 조원들부터 본인이 한살 더 많다고 서열 정리 하려고 하는 사람까지. 다양한 사람의 군상처럼 그룹 작업의 형태도 가지각색이다. 심지어 가족 관계에서도 별별 일들이 다 벌어지고 싸우고 화해하고 또는 결별하는 일들이 일어나는데 물론 완벽한 타인인 사람들과 작업하는 것이 쉬울리 없다. 시간은 정해져 있고 그 사람을 이해하는 데 쏟을 여유는 없다. 그룹 작업은, 이론적으로만 존재할지도 모르는 무조건적인 이해와 인내 그리고 헌신을 요구하며 그를 통해 타인과 함께 일하는 법을 배우게 하려는 의도가 다분히 깔려있다. 물론 그것은 학교에서의 이야기일 뿐이다. 밖을 나오는 순간 그것은 과제가 아니라 삶이 되어버린다. 모든 일들은 기본적으로 그룹 작업이며 사회적 동물의 후손으로 태어난 우리의 삶의 짐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는 개미가 아니지 않는가? 이해타산적 동물이며 이기적인 동물이 바로 인간이지 않은가? 한 공간에 밀어넣고 무조건 공동체의 삶은 강요하기엔 그들은 너무나 먼 곳에 알수 없는 존재로만 위치되는 그저 “누군가”일 뿐이지 않은가? 그들이 나에게 도대체 무엇을 해줄것이며 그들은 나에게 어떤 기대를 할것인가.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것은 누가 그렇게 정한 것이던가. 500명의 한계를 가진 사회 규모에서만 가능한 것을 우리는 그저 단순이 따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엄연한 실체를 가지고 어떠한 책임도, 하찮은 점수 혹은 시간 낭비 혹은 프로젝트 실패로 인한 해고 이외에, 질 필요 없는 우리는 사회적 인간이기 보다 약속의 동물이 아니던가?

오늘 또다시 그룹 모임이 취소되었다. 바로 한시간 전 갑작스럽게 취소된 오늘의 미팅은 큰 목표가 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단순히 친목을 위한 모임 또한 아니었다. 우리는 대화를 했었어야하고 의견을 나누었어야하며 계획을 세우고 그 다음을 논의했었어야 했다. 아무것도 없었다. 1년이나 우리는 지속적으로 만나왔지만 어떠한 결과도 내지 못한채로 이렇게 흐지부지 멀어져가고만 있다. 그리고 오늘 또다시 미팅이 취소되면서 난 이러한 과정 자체에 회의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사회적 동물인가 약속의 동물인가. 아니 두개는 결국 같은 것이던가? 한숨이 나오고 답답한 마음 한편으로 왜 나 혼자서만 이렇게 열정적인 마음을 새로 지피고자 노력하는가 다시한번 질문하게 된다.

과거 모임에서 귀신의 존재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과거에서 돌아오는 완성되지 못하는 현재라고 생각했고 한명은 완성되지 못하는 미래에 대한 현재의 투영이라고 생각했다. 완성되지 못한 것은 무엇일까. 나는 과거의 인간이다. 인간은 모두 과거를 가지고 있지만 현재가 완성되지 못하기에 과거또한 완성되지 못한채로 현재에 이끌려나온다. 나는 오늘도 현재의 상태에서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며 과거와 같은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하지만 과거는 현재로 이어지는 현재이며 성공할 때까지 혹은 변화할 때까지 과거의 실패는 영원히 현재의 실패이다. 안타깝다. 나는 과거에 홀려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 홀려있다. 현재에 충실히 살아간다는 것은 과거와 단절을 의미하며 현에를 과거처럼 여기고 미래로 향한다는 것을 의미할지도 모른다. 현재를 과거의 미래로 여길 것인가 미래의 과거로 여길 것인가. 이도저도 아니면 현재를 미래이자 과거의 합으로 여길것인가.

난 어느 쪽인가. 어느 쪽이었을까. 어느 쪽일까. 결국 변하지 않는건 변한다는 것이다. 마음을 좀 더 편하게 가지도록 하자. 따스한 집이 있고 가족이 있고 난 내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게 버텨주는 몸이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