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벌린의 낭만주의의 뿌리
전반적 낭만주의의 다중성에 관하여, 그 정의할 수 없음에 관하여
프랑스대혁명 1789년 칸트 1724-1804 발터 벤야민 1892-1940
1760년에서 1830년의 세월 사이에 무언가 변혁” (Berlin, 2021, p. 44)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초반 -> 태도의 변화 = 볼테르가 위선자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변화 -> “이런 태도는 독일에서 싹을 퇴워 빠른 속도로 자라났다.” (Berlin, 2021, p. 50) → 18세기 후반(아직 낭만주의 운동이라고 온당하게 불리기 전)부터 가치관의 급진적 전환 (사상, 감정, 행동에 영향을 끼침)
“다만 그 정수에 해당하는 무언가에서 나타났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그 무언가란, 만약 그것이 없었다면 내가 말하려는 혁명도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고, 낭만주의 운동 같은 현상(낭만주의 미술, 낭만주의 사상)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모든 사람이 납득하는 그 혁명의 귀결들이 도무지 가능하지 않았을 그런 특성을 말한다.” (Berlin, 2021, p. 24)
낭만주의는 이러한 "어떠한 가치관의 급진적 전환"에서 가장 강력한 표현이자 증상을 드러낸 운동이다. 이 파급력은 영국의 산업 혁명, 프랑스의 정치 혁명, 러시아의 사회경제 혁명에 못지않는 영향을 미쳤다 = 사실상 저 세 혁명과 모든 차원에서 연결된다.
“낭만주의의 중요성은 그것이 서구 세계의 삶과 사유를 변모시킨 가장 거대한 최근의 운동이라는 점에 있다. 내게는 서구에서 가장 큰 의식의 전환이 일어난 단일한 사례로 보이며, 이에 비해 19세기와 20세기 동안 발생한 다른 모든 전환들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고 그래 봤자 이 운동의 영향을 깊게 받은 것들로 보인다.” (Berlin, 2021, p. 35)
Introduction: 전반적 낭만주의의 다중성에 관하여, 그 정의할 수 없음에 관하여
벌린이 자주 인용하는 이마누엘 칸트의 공식에 따르면,
“비뜰어진 인간성의 재목으로 올곧은 것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Berlin, 2021, p. 9)
“즉, 사상과 그 적용 사이의 간극이 인간의 불완전성을 재는 척도라는 것이다.” (Berlin, 2021, p. 10)
더 나아가 어떤 사상이 일단 세상에 나오고 나면, 원래의 착상과는 근본적으로 어긋난 형태로 모양을 바꿔 재등장한다는 주장을 한다.
흄의 주장 (믿음은 이성적 추론이 아닌 습관의 산물이다) → 무신론적인 회의주의 철학의 일부로 개진된 것이었으나 기독교 신앙지상주의자 [[Johann Georg Hamann|J. G. 하만]] Hamann이 흄의 논증을 이용해 기적이 존재한다는 주장을 옹호하는데 사용함. 즉 알길이 없음 흄(인과율의 회의주의)을 회의주의를 이용해 실제로 일어난다고 주장
“내가 보기에 계몽주의에 가장 맹렬한 타격을 가하고 낭만주 의의 전반적 과정에 물꼬를 튼 한사람이 있다〔...〕. [...] 그〔하만〕는 흠 에서 시작했고 결국 흠이 옳았다고 말했다. 우리가 우주를 안다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자문한다면, 우리는 우주를 지성이 아니라 신앙을 통해 안다는 게 그 답이다.” (Berlin, 2021, p. 10)
통상 하나로 묶이는 운동들에 실제 공유했던 지적 다짐이 하나라도 있었냐는 의문시하는 태도가 유행이지만 벌린은 획일적인 운동은 아님에도 계몽주의에는 “이들 모든 사상가의 공통점은 덕徳 이 궁극적으로 앓에 있다는 관점” (Berlin, 2021, p. 74) 이라고 주장한다.
계몽주의의 기본 가정
- 모든 진정한 의문은 원리상 답변이 가능하다.
- 타인에게 가르치고 배울 수 있는 방법들을 통해 이 답변을 알아낼 수 있다.
- 그리고 모든 답변은 서로 양립할 수 있어야 한다.
이 가정들은 계몽주의 사상가들에만 한정된 것이 아닌 여러 시대와 문화에서 나타났으며 이를 영원의 철학 [[perennial philosophy]] 을 표현하는 것이었다 → 서양 주류 전통의 척추를 형성
“낭만주의는 바로 여기에 균열을 일으킨 것” (Berlin, 2021, p. 69)
“낭만주의는 단지 계몽주의에 대한 반동만이 아니라 "확실히 우리 시대 서구 의식의 가장 커다란 변혁” (Berlin, 2021, p. 66)인 셈이었다.
- 독창성이라는 생각을 예술에 도입함 → 창조자로서의 예술가라는 발상 그 자체가 바로 낭만주의의 유산이라고 제안
- 새로움 그 자체가 예술 작품의 가치 있는 성질로 여겨지게 된 것은 19세기 초에 낭만주의가 만개하고 난 다음의 일이다.
- 진정성에 대한 강조는 점점 더 커졌다. 진정성이란모름지기 인간이 라면 자신이 직접 창조한 가치나 어떤 식으로든 자기 것으로 만든 가치 그 자체만을 다른 그 어떤 것보다 더 중요한 가치로 여기며 추구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Berlin, 2021, p. 12)
“문화란 순수하고 외래의 영향을 받지 않는 그 자체로 단순한 완전체라는, 아니 이상적으로 말하자면 반드시 그런 완전체여야 한다는 발상으로 발전했다.” (Berlin, 2021, p. 12-3)
“이 무렵부터 낭만주의는 예술계 바깥으로 흘러넘쳐 윤리와 정치의 영역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표준적인 자유주의의 관점에 따르면 낭만주의가 정치에 미친 영향은 거의 전적으로 부정적이다” (Berlin, 2021, p. 13)
“낭만주의는 피히테 [[Johann Gottlieb Fichte]] 같은 민족주의자들뿐 아니라 극우 반동주의자 샤를 모라스 [[Charles Mamras]] 처럼 유럽의 파시즘과 밀착해 있던 위험한 시내상가들도 들이마신 독주였다.” (Berlin, 2021, p. 13)
“그들은 [낭만주의자들은] 평화로운 공존과 이성적 타협을 경멸했다. 그들에게는 깊숙이 간직해 온 가치들을 열정적으로 표출하는 것만이 진정으로 인간적이고 존중할 만한 것이었다.” [...] “인간이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창조하는 존재일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본인이 자유롭게 선택한 청사진을 열렬히 찬동하는 데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Berlin, 2021, p. 14)
비이성적인 용솟음에 주목하고 "인간사에서 불완전한 평형을 보존할 필요성" (Berlin, 2021, p. 262)"을 보여주었다. 그러므로 모순되게도 오히려 낭만주의의 결과는
“자유주의, 관용, 품위, 그리고 삶의 불완전성에 대한 자각이자, 일정 수준 고양된 이성적 자기 이해이다” (Berlin, 2021, p. 262)
“벌린이 발견한 낭만주의와 지유주의의 연결고리는 더 일반적인 진실을 잘 예증해 준다. ==사유의 전통이나 그런 전통을 체현한 인간들은 서로 완전히 밀폐된 채로 존재하는 단순한 완전체들이 아니다==.” (Berlin, 2021, p. 16)
“우리 모두가 수많은 전통의 상속자이며 이런 사상의 가닥들이 뒤엉킨 모순을 우리 안에 지니고 있음을보여 주고 있다. 우리의 정신 발육에 계몽주의가 미친 영향을 제거할 수 없듯이 낭만주의자들이 우리 에게 미친 영향 또한 제거할 수가 없다. 제거하려 해서도 안 된다.” (Berlin, 2021, p. 17)
어떤 의미에서 낭만주의 운동의 본질이란 "[서구의 역사에서] 예술이 삶에 대해 일종의 독재를 행사했던 아마도 최초의 순간이었다"는 것이다. (Berlin, 2021, p. 22)
낭만주의의 정의를 찾아서
사상의 역사뿐만 아니라 의식, 의견, 행위의 역사나 도덕, 정치, 미학의 역사도 큰 틀 혹은 모형에서 보면 지배적 모형들의 역사다. 한 문명을 확인한다거나 설명, 분석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지배적 패턴을 가능한 한 따로 떼어 내어 살펴보려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시로:
- 고전기의 그리스 철학이나 문학, 플라톤 철학에서 보이는 패턴 → 기하학적 모형 혹은 수학적 모형이 지배함 + 깨질 수 없는 공리적 진리 + 오류 불가능한 결론을 연역하는 것이 가능함 → 절대적 지혜에 도달하는 것이 가능하며 이를 통해 고통, 의심, 무지, 모든 형태의 인간적 악행과 어리석음이 지상에서 사라질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 르네상스, 스피노자, 18세기의 사상가들, 19세기의 사상가들도 진리와 그에 이르기 위한 특정 종류의 엄격한 훈육 혹은 특정 종류의 방법이 필요하다는 관념에 영향을 받음 "걸핏하면 파멸을 야기했던 과거의 비극, 악덕,우둔에서 마침내 벗어날수 있게"된다.
- 유대교나 기독교: 가족생활이라고 하는 개념, "자녀들의 아버지 사랑, 인간의 형제애, 용서, 아랫사람에 대한 윗사람의 명령 행사, 의무감, 파계, 죄악 및 그에 따른속죄의 필요성" (37)
- 이에 대해서 악에서 벗어나기란 책에서도 동일하게 이야기함 하지만 유대교가 "아버지" 중심이었던 것이 기독교에선 "아들" 중심이 됨
하지만 “모형은 경험의 총체를 설명하는 데 실패하고 만다. 해방자로 시작 하지만 그 끝은 모종의 독재인 것이다.” (Berlin, 2021, p. 37)
“세계를 유기적으로 바라본다 는 것은 세계를 이를테면 한 그루의 나무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나무는 모든 부분이 다른 모든 부분을 위해서 살고 또한 다른 모든 부분 덕분에 사는 존재이다. 반면 세계를 기계적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아마도 어떤 과학적 모형의 결과일 것이다. 이런 모형에서 각 부분들은 서로에게 자기 바깥에 있는 것들이며, 국가나 다른 어떤 인간적 제도들은 행복을 증진하거나 서로에게 해를 입히지 못하게 하는 목적을 이루기 위한 부속 품으로 간주된다. 세계를 바라보는 이런 시각들은 삶에 대한 매우 상이 한 개념화로서 상이한 세간의 풍조에 속하며 상이한 사고방식의 영향을 받는다.” (Berlin, 2021, p. 40)
[[Isaiah Berlin|벌린]]은 낭만주의 운동이 거대하고 급진적인 변화, 즉 예술 학문이 주도권을 획득하고 당대 세대의 상상력에 엄청난 지배력을 행사한 결과 다른 영역에까지 그 힘이 적용되는 변화를 일으켰다고 주장하며 그 이후로 이에 비견할 만한 사건은 아무것도 없다고 이야기한다. (40)
“허버트 리드 [[Herbert Read]]와 케네스 클라크[[Kenneth Clark]]는 낭만주의가 마음만 먹으면 어디서든 찾아낼 수 있는 영속적인 마음 상태라는 입장을 견지한다.” (Berlin, 2021, p. 41)
벌린이 주장하는 낭만주의는 시간적으로 한정되며, 18세기 중반 독일에 한정된다. 프랑스 18세기는 "만사가 평온함과 유연함에서 비롯되고, 인생과 예술의 규칙들이 준수되고, 이성이 전반적으로 전진하고, 합리성이 진보 중이며, 교회가 퇴색하고 있고, 프랑스 계몽철학자들의 대단한 공세 앞에 불합리가 무릎을 꿇어가던 우아한 세기이다.” (Berlin, 2021, p. 41-2)
그러던 것이 갑작스런 변화
- 고딕건축물에 대한 관심
- 내성 內省에 관심을 갖는다
- 사람들은 갑자기 신경과민이 되고 우울해진다.” (Berlin, 2021, p. 42)
그리고 동시에
- 불만족과
- 프랑스 혁명
- 공포정치
“18세기 말에 가까워지면서 무언가 대격변 [갑작스런 파열]의 사건이 발생했다는 전반적인 느낌이 든다.” (Berlin, 2021, p. 42)
낭만주의 운동의 아버지라고 불린 루소는 이 낭만주의 운동을 부흥시킨 사람이라고 부르기에 합당한 인물이지만 자코뱅파의 사상에 책임을 져야 할 루소는 낭만주의와 명백한 관계가 있지 않으며 사상이 사상을 낳은 것이 아닌 “반면에 모든 역사가들이 하는 말마따나 낭만주의 운동은 온갖 종류의 보편성에 대한 열띤 저항이었다.” (Berlin, 2021, p. 44)
18세기 중반부터 19세기 초반에 생긴 변혁
빅토르 위고의 친구들, 마담 스탈이 프랑스에 전달한 독일의 정신, 낭만주의 이론가 슈레겔 [[Friedrich Schlegel]] 형제, [[Johann Wolfgang von Goethe]]의 친구들, 바이런 [[George Gordon Byron]]에게 영향을 받은 이들까지 이들에게서 발견되는 공통적인 세상을 바라보는 모형 틀.
“그들이 최고의 중요성을 부여하는 가치들은 고결성, 진실성, 어떤 내면의 빛 앞에서 자신의 목숨까지도 기꺼이 희생하는 태도, 자신의 전부를 희생할 가치가 있고 삶과 죽음 모두를 걸 만한 가치가 있는 어떤 이상에 대한 헌신 등과 같은 것들이었다.” (Berlin, 2021, p. 45) “우리는 상식과 중용 같은 것은 그들의 생각과는 매우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발견했을 것이다.” (Berlin, 2021, p. 45) “그들이 순교 그 자체의 가치를 믿었으며” (Berlin, 2021, p. 46) “‘그것이 무엇이든지간에’, 바로 이 말이 중요한 것이다.” (Berlin, 2021, p. 46)
17세기 초반의 낭만적인 세상 즉 순교 그 자체의 그 가치를 믿는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희생을 하는 방식과는 다르게 16세기 사람들은 종교 전쟁 속에서 상대방, 가톨릭교도와 프로테스탄트들의 사이는 서로 그 방식으로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즉 “그 어떤 기독교 기사도 무슬림과 맞서 싸울 때 그 이교도들이 불합리 한 교리를 믿으면서 품고 있던 순수성과 진실성을 존경해야 한다는 일 반사람들의 기대가 있으리라 상상해봤을 리 없다.” (Berlin, 2021, p. 47)
“우리는 1820년대에 이르러 마음의 상태, 즉 동기가 결과보다 더 중요하고 의도가 결과보다 더 중요하다고 보는 시각을 발견 한다.” (Berlin, 2021, p. 48)
예시:
- [[Voltaire]]의 희곡 [[Mahomet]] 마호메트에 대한 해석
- 마호메트는 잔인하고 광신적인 괴물로 등장하며 교회를 공격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그러나 한참이 지난 후 칼라일 [[Thomas Carlyle]]은 [[@carlyle_heroes_2013]]에서 마호메트에대해 전형적인 낭만주의 운동의 대변자답게 아무 쓸모도 없는 뒤틀린 "시들어 버린, [...] 고물세기"에 지나지 않는 18세기와 비교하며 "어머니 자연의 위대한 가슴으로부터 모습을 드러낸 불같은 생명의 덩어리"로 묘사한다. 칼라일은 “그는 같은 논고들에서 “단테의 숭고한 가톨릭주의는 [...] 루터에 의해 조각조각으로 찢어져야 한다. 셰익스피어의 고귀한 봉건주의는 [...] 프랑스 혁명으로 종언을 고해야 한다.”라 고 말한다.” (Berlin, 2021, p. 49) 그는 또한 볼테르가 그런 위선자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Berlin, 2021, p. 50)
- 비극을 바라보는 태도
- 비극이란 도덕의 오류였거나 지성의 오류이며 그 오류는 피할 수도 있었고, 피하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고 이해한 전 세대, 즉 지식, 기술, 도덕적 용기, 생활 능력, 올바른 일을 알아보고 그것을 실천으로 옮길 수 있는 능력 등등을 결여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기인
- 그리스인: 신들이 우리에게 전해 준 오류, 전능한 존재였다면 오류를 저지르지 않음 그러므로 불운도 없음 → 셰익스피어의 비극에도 어느정도 해당됨.
- 19세기 초나 18세기 말 바뀜
- [[Friedrich Schiller]]의 도적 떼 Die Räuber 에서 흉악한 살인을 저지름으로 혐오스런 사회에 복수하려는 도적 악당 카를 무어가 나오며 두 개의 가치 집합이 충돌한다
- 선과 선의 충돌, 모종의 불가피한 충돌, 제멋대로 지상을 배회하는 폭풍우의 충돌, 화해할 수 없는 가치관의 충돌,
- “중요한 것은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걸고 이런 가치들에 헌신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이야말로 비극에 어울리는 영웅들인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속물이고, 부르주아이고,선하지 않은 사람 이며, 글을 쓸 가치도 없는 자이다.” (Berlin, 2021, p. 52)
- [[Friedrich Schiller]]의 도적 떼 Die Räuber 에서 흉악한 살인을 저지름으로 혐오스런 사회에 복수하려는 도적 악당 카를 무어가 나오며 두 개의 가치 집합이 충돌한다
- “스탕달 [[Stendhal]] 은 낭만주의인 것들은 현대적이고 흥미를 불러일으키지만 고 전주의 classicism는 노쇠하고 따분할 뿐이라고 말한다.” (Berlin, 2021, p. 55)
- “낭만주의란 무언가 폐물이 된 것을 향해 탈출하려는 것이 전혀 아니라 그와는 정반대로 우리 삶에 개입하고 있는 힘들을 이해하는 문제와 관련 있다는 것 이다.” (Berlin, 2021, p. 55)
- 비극이란 도덕의 오류였거나 지성의 오류이며 그 오류는 피할 수도 있었고, 피하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고 이해한 전 세대, 즉 지식, 기술, 도덕적 용기, 생활 능력, 올바른 일을 알아보고 그것을 실천으로 옮길 수 있는 능력 등등을 결여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기인
설령 발자크 [[Honoré de Balzac]]의 《미지의 걸작Le Chef-d'oeuvre Inconnu》 의 주인공처럼 미쳐서 자신의 캔버스를 물감으로 뒤덮어 버리고 그리하여 종국에는 지성적이라고 할 만한 것은 하나도 없이 오로지 반지성적이고 비이성적인 그림의 무시무시한 혼란만이 남는다 하더라도, 그럴 때조차 그런 인물은 동정 그 이상의 대우를 받을 가치가 있다.
→ 대표적 이미지 "헝클어진 초라한 머리로 다락방에 앉아 있는 베토벤"
“분명 히 무슨 일이 벌어졌다. 그 일이 무엇이냐고 물을 때 우리는 주정주의를 향한 거대한 방향 전환이 있었다는 말을 듣는다. 원초적이고 외진 것(시 간적으로도 외지고, 공간적으로도 외진)에 갑작스레 관심을 갖게 되었고, 무한성에 대한 갈망이 폭발했다는 것이다.” (Berlin, 2021, p. 53)
“그러나 동시대 사람 괴테 [[Johann Wolfgang von Goethe|Goethe]]는 낭만주의는 질병이며, 나약하고 역겨운 짓거리이고, 방종한 시인과 가톨릭 반동주의자 일파가 질러대는 고함 소리에 불과한 반면, 고전주의는 호메로스나 〈니벨룽의 노래〉처럼 강하고,신선하고, 유쾌하며, 건전하다고 말 한다.” “니체 [[Friedrich Nietzsche]]는 낭만주의는 질병이 아니라 치료법이며 질병의 구제책이라 고 말한다.” (Berlin, 2021, p. 55)
“프리드리히 폰 겐츠 Friedrichvon Gentz는 낭만이란 히드라의 세 머리 중 하나이며 나머지 두 머리는 개혁과 혁명이라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낭만주의는 시실상 좌파의 공갈 협박으로서 반드시 진압되어야 한다” (Berlin, 2021, p. 55)
프랑스의 젊은 낭만주의자들, 이른바 ‘젊은 프랑스 lesjeunes-France [낭만주의적이고 자유주의적인 예술을 주구하는 프랑스의 젊은 세대를 지칭하는 말로 1830년에 등장한 용어]는 “낭만주의는 혁명이다Leromantisme c'est la Revolution 라고 말하면서 이에 응수한다. 무엇에 맞서는 혁명이냐고? 명백히 말하건대, 모든 것에 맞선 혁명이다.” (Berlin, 2021, p. 56, bold in original)
“당대에 낭만주의 최고의 선구자이자 최고의 전령 겸 예언자였던 [[Friedrich Schlegel]] 프리드리히 슐레겔은 인간에게는 무한을 향해 솟구쳐 싶은 지독하리만큼 채워지지 않는 욕망과 더불어 개체성의 편협한 속박을 뚫고 나아가려는 열정적인 갈망이 있다고 말한다.” (Berlin, 2021, p. 56-7)
“프리드리히 슐레겔의 형인 이우구스트 빌헬름 슐레겔과 마담 스탈은 낭만주의가 로망스어권 국가들[스페인, 포르투갈, 프랑스, 이탈리아, 루마 니아 등 통속 라틴어에 기반한 언어를 시용하는 국가들을 통칭함]에서, 아니 적어도 로망스어에서 생겨난 것이라는 데에 동의한다” (Berlin, 2021, p. 57)
이 주제에 관한 저술가, 비평가들이 낭만주의적이라고 부르는 특징들
“낭만주의는 원초적이고, 태생적인 것이며, 풋내기이고, 자연스러운 인간의 혈기왕성한 삶의 감각이지만, 그것은 또한 창백하고, 열병에 들뜨고, 불건전하고, 퇴폐적이며, 세기의 질병 maladiedu siecle 이고, 무정한 미녀 La Belle Dame Sans Merci (존 키츠 [[John Keats]] 의 시 제목)이며, 죽음의 무도이 고, 실은 죽음 그 자체이다” (Berlin, 2021, p. 58-9)
“그것은 [[셸리]]가 말한 바대로 다채로운 색깔의 유리로 만든 돔이자 영원성이 내뿜는 무색의 광채이다.” (Berlin, 2021, p. 59)
“또한, 그것은 친숙 한 것들이고,우리의 독특한 전통 감각이며, 일상적 자연의 명랑한 일면 에 들어 있는 기쁨이고, 느긋하고 소박한 시골 사람들의 친숙한 풍경과 소리들이다.” (Berlin, 2021, p. 59)
“바레스 [[Maurice Barrès]] 가 말한 대지와 죽은 자들 la terre et les morts , 죽은 자들과 산 자 들과 아직 태어나지 않은 자들의 거대한사회 이다.” (Berlin, 2021, p. 60)
“가장 명망 높은 학자 중 한 명인 [[A. O. Lovejoy]] 러브조이가 이런 상황에 직면하여 거의 절망적인 상태에 이르렀다는사실이 아마도 그리 놀랄 일은 아닐 것이다. 그는 뒤엉킨 낭만주의 사상의 실타래를 힘 닿는 데까지 최대한 풀어냈으며 [...] 그는 낭만주의라고 불러도 아무도 반대하지 않을 두 개의 표본을 뽑았다.” (Berlin, 2021, p. 62)
- 원시주의
- 영국의 운문에서 시작했고 어느 정도는 18세기 초 영국 산문에서도 시작되었다 할 수 있는 원시주의
- 타락한 세련성과 알렉산더격 운문[약강 6보격으로 구성된 시행]에 반대하면서 고귀한 야만성, 단순한 삶, 불규칙적 패턴의 자발적 행위를 찬양
- 한쪽은 로빈슨 크루소의 섬 같은 곳으로 가서 그곳의 자연과 소통하 면서 타락하지 않은 소박한 사람들과 함께 살고자 한 것이고
- 멋 부리기이다” (Berlin, 2021, p. 62)
- 다른 한쪽은 모종의 폭력적인 예술지상주의와 멋 부리기를 추구한 것
둘 다 모종의 문명화에 반항
“그러나 그 사실이 그것들 모두의 공통된 본질이 있다는것을 함의하지는 않는다. 존 스미스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수백 명 있다는 사실이 그들 모두가 같은 혈통을 타고났음을 의미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Berlin, 2021, p. 64)
“낭만주의 운동은 있었다. 그 운동에는 중심을 이루는 무언가가 분명히 있었다. 그것은 엄청난 의식의 혁명을 창조했으며, 과연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밝혀내는 일은 중요하다.” (Berlin, 2021, p. 65)
계몽주의에 대한 최초의 공격
17세기 후반과 18세기 초의 계몽주의의 정의 1760년대와 1770년대에 독일에서 전개된 분위기
“서구 전통 전체가 의지해 온 이를테면 세 개의 버팀목이라고 말할 수 있는 세 개의 명제” (Berlin, 2021, p. 68)
- “첫째, 모든 진정한 질문에는 해 답이 있으며 만약 어떤 질문에 해답이 없다면 그것은 질문이 아니다. 해 답이 무엇인지 우리가 모를 수도 있지만 다른 누군가는 알 것이다.” (Berlin, 2021, p. 68)
- “혹은 어쩌면 그런 황금시대란 과거가 아니라 미래에 있는 것이며 우리는 그 때에 이르러 진리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여기서가 아니라면 거기서다. 지금이 아니라면, 다른 어떤 때이다. 하지만 원리상 해답은 알려져야 하며, 인간이 답을 알 수 없다면 어쨌든 전지한 존재인 신이라도 답을 알아야 한다.” (Berlin, 2021, p. 69)
- “이것은 기독교인들에게건 학자에게건 두 부류 모두에게 공통된 명제이며, 계몽주의건 20세기의 실증주의 전통이건 마찬가지이다. 이 명제는 사실상 주류 서구 전통의 척추이며 낭만주의는 바로 여기에 균열을 일으킨 것이다.” (Berlin, 2021, p. 69)
- “두 번째 명제는 그 모든 해답은 알려질 수 있고, 그런 해답들은 우리가 배울 수 있으며 다른 사람에게 가르쳐 줄 수 있는 수단을 통해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Berlin, 2021, p. 69)
- “세 번째 명제는 모든 해답은 서로 양립이 가능해야 한다는 것이다.” (Berlin, 2021, p. 69)
- “하나의 참인 명제가 다른 참인 명제와 모순을 일으킬 수 없다는 것은 논리적 진리이다.” (Berlin, 2021, p. 69)
“간단히 말해 그 우주란 모든 진지한 질문에 대한 모든 참된 답변을 통해 기술되는 우주이다. 이 유토피아는 비록 우리가 그런 세계에 실제로 도달할 수는 없 을지라도 어쨌든 우리가 그것에 견주어 지금 현재 우리의 불완전성을 측량할 수 있게 해주는 고고한 이상인 것이다.” (Berlin, 2021, p. 70)
“계몽주의가 이 전통을 특별히 한번 비튼 측면은 그 해답들이 지금까지의 수많은 전통적 방식들로는 획득되지 않는다고 말한 점이었다.” (Berlin, 2021, p. 70)
“그것은 바로 이성의 올바른 사용을 통해 수학 같은 학문에서처럼 연역적으로 해답을 찾든지, 혹은 자연과학께서처 럼 귀납적으로 해답을 찾아내는 것이다” (Berlin, 2021, p. 70) “즉, 이런 생각의 일반적인 패턴은 인생 혹은 자연을 직소 퍼즐로 여긴다는 것이다. 우리는 널브러진 퍼즐 조각들에 둘러싸여 있다. 이 조각들을 다 짜 맞춰 넣는 어떤 수단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 (Berlin, 2021, p. 71)
“뉴턴은 당대의 물리학이 고전적이고 스콜라적인, 다량의 오류에 기초한 서로 엇갈리는 수많은 가설들 덕분에 매우 유사한 상태에 처해 있다는 시실을 발견했다” (Berlin, 2021, p. 72)
- “여태껏 사람들은 그런 세계에서 제각기 양립 할수 없는 원리들을 기치로 내걸고 서로 싸우고 서로 죽이고 서로 파괴 하고 서로모욕해 왔던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 희망은 더 없이 합당해 보였고 매우 훌륭한 인간적 이상처럼 보였다 어쨌든 그것이 바로 계몽주의의 이상이었음은 확실했다” (Berlin, 2021, p. 73)
- “[어떤이들은] 군중이란 배우고 깨우치지 못할 존재들이며 인간들사이에는 타고난 재능의 불평등이 항구적으로 존재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어떻게든 배운 사람들, 전문가들로 구성된 엘리트 계층에 복종하도록 사람들을 훈련하거나 유도할 수 없다면(항해술이나 경제학처럼 필요성이 분명한 기법들의 경우에 그렇게 하듯이), 지상에서의 삶은 언제까지나 밀림 속의 정글과도 같을 것이다.” (Berlin, 2021, p. 74)
- “평등, 자유, 동포애는 서로 양립할 수 있어야 한다. 자비와 정의도 그래야 한다. 만약 어떤 사람이 굳이 진리가 누군가를 비참하게 만들 수 있다고 말하려 한다면, 그 말은 어쨌든 거짓임이 입증되어야 한다” (Berlin, 2021, p. 75)
“이것이 바로 이들 모든 계몽주의자 가 갖고 있던 믿음이었다.” (Berlin, 2021, p. 75)
“계몽주의에 대한 공격이 취했던 특수한 형태를 디루는 문제로 넘어가기 전에 나는 이런 시각이 과학이나 윤리의 영역 못지않게 당연히 예술의 영역에도 깊이 스며들었다는 점을 설명하고자 한다.” (Berlin, 2021, p. 75) “예를 들어, 18세기 초의 지배적인 미학 이론은 인간은 자연 앞에 거울을 집어 들어야 한 다는 것이었다.” (Berlin, 2021, p. 75)
(자연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그들이 말한 생은 우리가 아는 그런 것이 아니라 그들이 보기에 삶에서 마땅히 추구하고자 애써야 한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것, 즉 모든 삶이 이루어 가려고 하는 어떤 이상적인 형식들을 뜻 했다” [...] “최상의 예술적 천재성은 자연과 인간이 다가서고자 애쓰는 내면 의 저 객관적 이상을 어떤 식으로든 시각화하고 그런 이상을 고귀한 회화안에 구현하는 데에 있었다.” (Berlin, 2021, p. 75-6) “즉, 세상에는 모종의 보편적 패턴이 존재하며 철학자나 과학자가 그것을 명제들로 구체화할 수 있듯이 예술가는 바로 이미지들로 그것을 구체화할 수 있는 것이다.” (Berlin, 2021, p. 76)
“발명된 게 아니라 발견된 저 오래된 법칙들은 그래도 여전히 자연이지만, 방식화된 자연이다.” (Berlin, 2021, p. 77)
그렇다면 그러한 이상화된 자연, 방식화된 자연은 무엇일까? → 세상에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더 탁월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계몽주의 사상의 전반적인 생각, 그런 탁월한 사람은 자연이 만든 불완전한 존재보다 더 가치 있는 인물로, 예술가의 주목을 받을 만한 이유가 있다. 자연은 완벽성을 지향하며, 이를 통해 규범과 이상을 정의한다. 회화의 목적은 탐구하는 지성과 영혼에게 자연이 추구하는 이상을 전하는 것이다. 따라서 아름다움, 위대함, 숭고함, 지혜와 같은 객관적 이상을 전달하는 것은 예술가, 철학자, 설교자, 화가, 조각가, 작곡가의 소임이다. (Berlin, 2021, pp. 77–79)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절름발이나 눈먼 거지보다 더 근사한 인물이며, 따라서 자연이 빚은 우발적 사고에 불과한 거지에 비해 예술가의 주목을 더 많이 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 자연은 완벽성을 향해 나아가는 경향이 있다.” (Berlin, 2021, p. 77) “그 완벽성은 우리에게 무엇이 규범이고 무엇이 비정상적인지를, 또한 무엇이 이상적인 것이고 무엇이 그 이상으로부터의 일탈인지를 말해 준다.” (Berlin, 2021, p. 78) “회화의 목적은 탐구적인 지성 혹은 탐구적인 영혼에게 자연이 추구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전해주는 것이다.” (Berlin, 2021, p. 78) “같은 이 치로 세상에는 아름다움, 위대성, 숭고, 지혜의 객관적 이상이 존재하며 어떤 식으로든 그런 것들을 우리에게 전달해 주는 것이야말로 작가, 철학자, 설교자, 화가, 조각가(그리고작곡가도 역시)의 소임인 것이다” (Berlin, 2021, p. 79) “수학이 완벽한 원을 다루듯, 조각가와 화가는 완벽한 형상을 다루어 야 한다. 이것이 바로 18세기 미학에 대체로 들어 있던 이성주의적인 개념이다.” (Berlin, 2021, p. 80)
“18세기 미학 이론가 가운데서도 가장 독창적인 인물로서 고전 미술에 대해 이런 향수 어린 열렬한 취향을 갖고 있던 요한 요아힘 빙켈만 [[Johann Joachim Winckelmann]] 은 고귀한 단순성 과 고요한 웅장함 에 관해 이야기한다. 어째서 고귀한 단순성인가? 어째서 고요한 웅장함인가? 그는 다른 사람들처럼 그저 모든 고대인이 고귀하게 단순한 사람들이었다거나 혹은 고요하게 웅장한 사람들이었다고 생각하는게 아니다. 그게 아니라 그는 실제로 그것이야말로 인간이 어떤 존재이어야 하는가를 이상적으로 개념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Berlin, 2021, p. 79)
“그것은 실재를 드러내 보여 주는 것이다. 실재, 인생, 자연, 이상, 이들 사상가에게는 이런 것들은 다 같은 것들이다.” (Berlin, 2021, p. 80)
“이런 태도가 18세기에 매우 전형적으로 나타난다.” (Berlin, 2021, p. 81) “그들의 주된 목표는 단순하다. 자료를 축적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일반 명제들을 수립하여 사람들에게 무엇을 해야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말해 주려는 것이다. 이것은 역사에 대해 취할수 있는 가장 비역사적인 태도이다.” (Berlin, 2021, p. 81) 이는 예술에서도 마찬가지로 "예술의 경우에 그것이 형식적이고, 고귀하고, 대칭적이고, 비례적이고, 사려 분별적인 결과물들로 이어지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Berlin, 2021, p. 81)
물론 예외들도 존재했지만 대체적으로 지배적 견해를 대표하는 사람들은 [[Voltaire]]와 그의 친구들 엘베시우스 [[Claude Adrien Helvétius]]같은 사람들, 풍트넬 [[Bernard Le Bovier de Fontenelle]] 같은 사람들이었다고 말할 수 있 을 것이다.” (Berlin, 2021, p. 82) 그 지배적 견해란 우리는 진보하고 있으며,계속 발견 해 나가는 중이며, 케케묵은 편견,미신, 무지, 잔혹성을 파괴하고 있으며, 사람들을 행복하고 자유롭고 덕 있고 정의롭게 살 수 있게 해줄 모종 의 과학을 확립하는 방향으로 잘 나아가고 있다는 믿음이었다.
[[Montesquieu]]가 약간 아주 심한 흠집을 낸 정도는 아니었지만 어지간히 생채기를 냈는데 (계몽주의를 대표하는 인물이었으나) 인간이 어디에서나 동일한 것은 아니라는 입장을 제안했다” (Berlin, 2021, p. 82) “다소 더 심각한 과열은 흠 [[David Hume]] 때문에 생겼다.” (Berlin, 2021, p. 85)
“흄은 계몽주의 철학자들이 믿었던 필연성,우주를 구성하고 있으며 이성이 파악하고 준수하며 살 수 있는 엄격한논리적 관계의 네트워크가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Berlin, 2021, p. 85)
→ 계몽주의 철학작들이 믿었던 필연성 (이상으로의 결말)을 통채로 날려버림, 본인이 그런 공격을 퍼붓고 있다고 보이지도 않음.
- “첫째, 그는 우리가 직접 인과 관계를 지각하는 것인지, 어쨌거나 그런 관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우리가 정말로 아는 것인지 의심했다.” (Berlin, 2021, p. 85)
- “흠에게 의심받은 두 번째 명제가 우리의 지금 목적에는 더 중요하다. 그는 외부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어떻게 아느냐고 자문하면서 논리적으로는 그것을 연역할 수 없다고 말했다” (Berlin, 2021, p. 85-6)
“나는 기하학의 명제를 증명할 수 있다. 산술의 명제도 증명할 수 있다. [...] “하지만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것에 대해서 수학적 확실성을 지닌 증명을 제시할 수는 없다.” (Berlin, 2021, p. 86) “따라서 나는 세계를 신뢰에 기초한 신념의 문제로서 받아들여야 한다. 신념은 연역적 확실성과는 다르다. 실제로 연역은 시실의 문제에는 전혀 적용되지 않는다.” (Berlin, 2021, p. 86)
세상에 대한 증명은 연역의 영역이 아닌 신념 추측의 영역이다.
“그들이 불러온 효과가 아주 큰 것은 아니었다.” (Berlin, 2021, p. 88) [[David Hume|흄]]과 [[Montesquieu|몽테스키외]]가 계몽주의의 세계관에 희미한 흠집을 냈지만 효과는 크지 못했음 → [[David Hume|흄]]은 이성적인 행동 방침과 비이성적인 행동 방침이 둘 다 존재하며 인간은 이성적인 수단을 통해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Berlin, 2021, p. 88) → 흄은 18세기 널리 알려진 명제를 믿었다. 여전히 과학을 믿었고 이성을 믿었다.
“18세기에 잘 알려져 있던 모든 명제를 믿었다.” (Berlin, 2021, p. 88)
“그의 사상이 논리적으로 함축하는 것들 은 실제로 19세기 후반과 20세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명백해졌을 뿐이 다” (Berlin, 2021, p. 88)
“내가논의하고 싶은 것은 매우 다른 진영에서 시작된 공격이다. 바로 독일인들로 부터다” (Berlin, 2021, p. 88)
독일의 관점과 독일에서의 흠집
독일에서 낭만주의는 프랑스 혹은 영국과는 매우 다른 환경에서 등장했다.
“17세기와 18세기 때 독일인에 관해 진실을 말하자면, 그들이 다소 후 미진 영토를 형성해 놓은 상태라는 것이다.” (Berlin, 2021, p. 88) 라이프니츠라는 철학자를제외하고 의미심장한 방식으로 영향을 미친 사람이 없던 독일은 영국이나 프랑스 심지어 네덜란드도 이뤄냈던 중앙집권적인 국가 지위를 성취하는 데 실패했다. (300명의 제후와 1,200명의 소제후가 지배) 또한 30년 전쟁 [[Thirty Years' War]]이라는 폭력적인 대혼란이 있었다. “그것은 독일 정신을 매우 심각한 수준으로 파괴하여 독일 문화가 변 두리 문화가 되고, 조그닿고 보잘것없는 지방 소국들로 모래알처럼 분열되는 결과를 낳았다.” (Berlin, 2021, p. 89)
“독일 문화는 루터 주의 류의 학술적으로 극단적인 현학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부지불식간에 표류해 들어가거나(깨알 같지만 매우건조한 학문적 성격을 띤), 아니면 그런 학술적 접근에 저항하면서 인간 영혼의 내면적 삶을 지향하는 반항의 기류 속으로 흘러 들어갔다” (Berlin, 2021, p. 89)
특히 일종의 민족적 열등감이라고 하는 거대한 콤플렉스가 그 시기에 생겨남 → 루터주의에서 갈라져 나온 경건주의 운동 (성서공부 중시와 개인과 신과 직접 맺는 관계 존중, 독일인에게는 종교적 내향성의 전통이 있었고 그에 따라 그들은 현세 의 천박함, 광휘. 세속적 명예의 추구, 프랑스나 이탈리아 같은 나라의 화려함 등과는 상당 부분 절연) 시작 (Berlin, 2021, p. 89-90) 예시: 바흐 [[Johann Sebastian Bach]], 천재적이었으나 라이프치히라는 특수한 내면적 삶, 경건주의 분위기에 국한된 음악.
비슷한 예시: 고대 그리스에서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도시 국가들을 멸망시키기 시작하고 스토아주의자[[Stoicism]]들과 에피쿠로스주의자 [[Epicurus]]들이 개인적 구원에 대한 새로운 도덕을 설교하기 시작, "자기가 정말로 욕망하는 것을 세계로부터 얻을 수 없다면, 그것을 원치 않는다고 스스로를 길들여야 한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없다면, 가질 수 있는 것을 원하도록 스스로를 길들여야 한다.” (Berlin, 2021, p. 92)
독일에서는 이것이 강렬한 내면의 삶으로 움직였으며 "고도로 개인적이고 격하게 감정적인 많은 문예, 지성의 혐오, 그리고 당연한 일이 지만, 무엇보다도 프랑스, 머리장식, 실크 스타킹, 살롱, 퇴폐, 장군,황 제. 그리고 단지 재물, 불의, 그리고 악덕의 화신들일 뿐인 세계의 모든 위대하고 장엄한 위인들에 대한 증오를 의미했다.” (Berlin, 2021, p. 93) → 18세기 일부 사상가들이 신봉했으며 [[Johann Wolfgang von Goethe|괴테]]와 [[Friedrich Schiller|실러]]가 일생 동안 맞서 싸웠던 이른바 지방주의 [[provincialism]] 이다” (Berlin, 2021, p. 93)
독일에서 18세기 사상가들 출신지는 많은 수가 천한 신분
- 천한 신분
- 레싱[[Gotthold Ephraim Lessing]]
- 칸트 [[Immanuel Kant]]
- 헤르더 [[Johann Gottfried Herder]]
- 피히테 [[Johann Gottlieb Fichte]]
- 하층민 중산 계급
- 헤겔 [[Friedrich Hegel]],
- 셸링 [[Friedrich Wilhelm Joseph von Schelling]] ,
- 실러 [[Friedrich Schiller]],
- 횔덜린 [[Friedrich Hölderlin]]
- 부유한 부르주아
- [[Johann Wolfgang von Goethe|괴테]]는
- 지방 대지주
- 클라이스트 [[Heinrich von Kleist]]
- 노발리스 [[Georg Philipp Friedrich Freiherr von Hardenberg|Novalis]]
반면 프랑스인은 아주 다른 세상에서 나타난 사람들이었다. (급진주의자이건, 좌익이건, 정통성의 가장 극단적인 반대자이건, 교회건, 군주정체건, 그냥 현재 상태 그 자체이건) “오로지 디드로 [[Denis Diderot]]와 루소 [[Jean-Jacques Rousseau]]만이 평민, 진짜 평민이었다. 디드로는 정말로 빈곤층 출신이었다. 루소는 스위스 사람이었고 따라서 지금 논의의 범주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Berlin, 2021, p. 95) 즉 대다수의 프랑스 사상가들 그 시대 사람들이 저항한 것은 같은 계층 출신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살롱에 갔고, 화려하게 치장했으며, 고도로 세련되고, 많은 교육을 받고 화려한 산문 스타일을 지녔고 너그럽고 멋진 시각으로 인생을 바라보는 사람들이었다.” (Berlin, 2021, p. 95)
“단지 그런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독일인들은 자극을 받 고’ 모욕감을 느끼고, 격노했다. 1770년대 초에 파리를 방문한 헤르더는 이런 사람들 어느 누구와도 친분을 맺을 수 없었다.” (Berlin, 2021, p. 95)
“아마도 이것이 프랑스인에게 품은 독일인의 적대적 감정의 뿌리 중 하나일 것이며 여기에서 바로 낭만 주의가 시작되었다.” (Berlin, 2021, p. 96)
[[Johann Georg Hamann|하만]] - 반항을 시작하다
계몽주의적 시각에 반대와 반항의 과정에 물꼬를 튼 한 사람 요한 게오르크 하만 [[Johann Georg Hamann]] (Berlin, 2021, p. 96), [[Immanuel Kant|칸트]]의 친구였으며 [[Johann Gottfried Herder|헤르더]]의 존경을 받았다. 헤르더는 확실히 역사서술의 전기를 불 러 온 인물로서, 오늘날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예술을 향한 전반적 태도를 유발한 측면도 어느 정도 있는 인물이다. 하만은 [[Johann Wolfgang von Goethe|괴테]]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괴테는 그의 원고들을 편집하고 싶어 했고 그를 당대의 가장 재능 있고 심오한 영혼의 소유자 중 한 명으로 여겼으며, 있음직한 모든 경쟁자들을 내치고 그를 지지했다.” (Berlin, 2021, p. 97)
“그는 [[David Hume|흄]]에서 시작했고 결국 흠이 옳았다고 말했다.” (Berlin, 2021, p. 98)
[[Johann Georg Hamann|하만]]은 일반명제들로 분석하려는 시도는 실패할 것이며 구체적인 사례들을 남아내는 일반 명제를 조야하게 만들어진 바구니와 같다고 이야기한다. 여기서 불가피하게 떨구어지는 것, 독특한 것, 특수한 것, 저 특수한 인간 혹은 저 특수한 물건이 지닌 특유의 성질이며 그것만이 오직 흥미로운 것들이라고 생각했다.
“이로부터 그는 일종의 [[Henri Bergson|베르그송]]적인 결론을 이끌어 냈다. 이른바 세상에는 생명의 흐름이라는 것이 있으며, 이 흐름을 잘게 잘라 분할하려는 시도는 그 생명을 죽이는 짓거리라는 것이다.” (Berlin, 2021, p. 99)
일반 원리나 일반 명제는 과학 안에서 그 나름의 목적에는 아주 잘 어울리는 것이이지만 인간이 궁극적으로 찾아내고자 하는 것, 무엇을 추구하고 실제로 무엇을 원하는지 원하는 것은 [[Voltaire|볼테르]]가 가정했던 것과는 매우 다른 것이었다. “과학이 인간 사회에 적용된다면 무시무시한 일종의 관료주의로 이어질 것이라고 하만은 생각했다.” (Berlin, 2021, p. 100)
“반면 하만에게 창조란 당연히 가장 입에 올리기 황송하고, 형언할수 없고, 분석이 불가능한 개인적 행위였으며, 그 덕분에 인간은 자연에 족적을 남겼고 자신의 의지를 솟구쳐 오르게 했으며, 자기의 말로 이야기했고, 자기 안에 머물러 있으면서 어떤 종류 의 걸림돌도 허용하지 않으리라는 말을 내뱉을 수 있었다.” (Berlin, 2021, p. 101)
1770년대의 젊은 낭만주의자 괴테가 하만의 영향 하에 드러낸 반응은 계몽주의가 인간 경험에 대한 모종의 이성적 배열을 산출하고자 한 프랑스인을 반대했다. 예시: 모제스 멘델스존에 대해서 곤충학자가 나비를 다루듯 아름다움을 다룬다고 이야기함.
[[Johann Georg Hamann|하만]]의 생각
- 신체와는 별개로 인간 안에는 무언가가 들어 있으며 그것은 그 기계 내부에서 고동치고 있는 일종의 귀신 같은 것이라는 발상 등은 인간의 총체적 본성, 통일체로서 인간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것이며 전형적인 프랑스의 해부적 관점인 것이다” (Berlin, 2021, p. 102)
- 우리는 생각을 할때 상징들로 생각하고 단어들로 생각하기에 모든 번역은 원리상 불가능하며 이해하기 위해서는 실제적인 생명의 원천들을 직접 대면해야 한다.
- “다른 언어들로도 근사치는 얻어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만약 우리가 다른 인간들과 정말로 접촉하고 싶고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무엇을 느끼는지, 그리고 그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정말로 이해하고 싶다면, 우리는 모든 몸짓 과 모든 뉘앙스를 이해해야 하며 그들의 눈을 봐야 하고 그들의 입술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관찰해야 하고, 그들의 말을들어야하며, 그들이 손으로 쓴 글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Berlin, 2021, p. 103)
- 예술에서 변덕과 환상을 완전히 없애 버리는 것은 예술과 인생과 명예를 상대로 암살 음모를 꾸미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Berlin, 2021, p. 103)
“18세기는 과학이 거둔 위대한 승리의 시대이다. 과학의 위대한 승전보들은 그 시대의 가장 경이로운 사건이다. 그와 동시에 이성주의가 너무 멀리 나간 것도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 바람에, 그런 경우들에서 늘 벌어지는 일이지만, 이런 유형의 이성주의 가 차단해 버린 인간 정서는 다른 방향에서 모종의 배출구를 찾아 나서게 되었다.” (Berlin, 2021, p. 106-7) “다소 놀랍게도, 우리는 유럽 역사상 그렇게 많은 비이 성적인 사람들이 무언가를 고수한다고 주장하면서 세상에 활개치고 다 닌 경우란 이전까지 한 번도 없었다는 시'실을 알게 된다. 프리메이슨 결 사와 장미십자회가 번창한 때도 바로 18세기이다.” (Berlin, 2021, p. 108)
“올림피아의 신들이 너무 길들여져서 너무 이성적이고 너무 정상적인 상태가 되었을 때, 사람들은 매우자연스럽게 더 어둡고 깊숙한 지하로 파고들어 간 신들에게 마음이 쏠리기 시작했다. 이것이 그리스에서 기원전 3세기에 벌어진 일이고, 18세기에 벌어지기 시작한 일이다.” (Berlin, 2021, p. 107)
18세기는 겉으로는 정합적이고 우아해 보였으나 이 세기의 표층 아래로 온갖 종류의 어두운 힘이 준동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하만 신조의 핵심은 자연과 역사 속에서 신의 음성을 감지하는 일종의 신비적 생기론이다. 신의 음성이 자연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진다는 것은 신비주의의 오랜 믿음이었다. 하만은 여기에 역사도 우리에게 말을 전한다고 하는 미래의 신조를 보랬다.
“그는 신화가 세계에 관한 완전히 거짓된 진술들이 아니며 사람들의 눈을 가리고 싶어 하는 파렴치한 인간들의 사악한 창작물도 아니고, 시인들이 자기 상품을 치장하려는 목적으로 고안해 낸 예쁘장한 장식물도 아니라고 말한 가장 초창기 사람 중 한 명이었다(비코보다는 나중 사람이지만 당시에 비코를 읽은 사람은 없었다).” (Berlin, 2021, p. 110) “신화란 인간이 말로 형언하기 어려운 자연의 신비로운 느낌을 표현하는 방식이었으며,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없었다. 신화가 단어들을 사용했다면, 그런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단어들은 사물들을 너무 많이 토막 낸다. 단어들은 시물들을 분류했고, 또한 너무 이성적이었다.” (Berlin, 2021, p. 110)
이러한 저항은 독일을 넘어 영국에서도 드러났다. “그 나라에서 이런 관점을 가장 설득력 있게 옹호한 인물은 [[Johann Georg Hamann|하만]]보다 조금 나중 사람인 신비주의 시인 월리엄 블레이크 [[William Blake]] 였다.” (Berlin, 2021, p. 111) “같은 유형에 속하는 모든 신비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블레이크가 바랐던 것은 모든 삶을 옥죄는 새장에서의, 정신적 본령에 대한 일종의 통제력 회복이었다.” (Berlin, 2021, p. 111)
독일인들은 [[Denis Diderot|디드로]]를 단지 새로운 유물론, 새로운 과학, 종교적인 삶의 모든 요소의 새로운 파괴를 대표하는 인물로 보았지만 “그는 대단히 격정적인 어조로 예술을 매우 자주 언급하며, 위대한 천재, 위대한 예술가에게는 17세기 식 표현을 빌리자면 무언 가 ‘뭐라 말할 수 없이 좋은 것 je ne sais quoi’이 있다고 말한다” (Berlin, 2021, p. 113)
“디드로의 글 중에는 범죄자와 예술가의 근사성에 관해 사색한 대목이 있다. 그가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범죄자나 예술가는 둘 다 규칙에 도전하고 둘 다 힘과 장엄과 광휘를 사랑하며 정상적인 삶의 자취들이나 과도하게 문명화된 인간의 철저히 길들여진 삶 따위는 걷어 차 버리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Berlin, 2021, p. 114) “이것은 재주와 대비되는,규칙과 대비되는, 18세기가 소위 덕목이라 며 자랑하는 건전성, 합리성, 측량, 비율, 기타 나머지 모든 것과 대비되는 천재성에 대한 찬가이다” (Berlin, 2021, p. 115)
“여기서 누군가 다시 이런 질문을 던질 것이다. [[Jean-Jacques Rousseau|루소]]는 어떤가? 요점을 잘 잡은 질문이다.
“하만은 소크라테스였고, 루소는 소피스트였다.” (Berlin, 2021, p. 117)
루소의 신조, 루소의 말들이 낭만주의 운동에 영향을 준 한 요인이라는 시실을 부인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그럼 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시 한번 반복해야겠다. 그의 역할은 과장되었다.” (Berlin, 2021, p. 115) 루소가 말 한 것은 단지 이게 전부다. 우리는 타락한 사회에 산다. 우리는 나쁘고 위선적인 사회에 산다. 이런 사회에서 인간은 서로에게 거짓말을 하고 서로를 살해하며 서로에게 잘못을 저지른다. 진리를 발견하는 일은 가 능하다. 이 진리는 세련된 교양이나 데카르트적 논리를 통해서가 아니 라, 타락하지 않은 순박한 인간, 고귀한 야만인, 혹은 어린이, 혹은 누가 되었든지 간에, 바로 이런 이들의 마음속을 들여다봄으로써 발견된다. “그리고 그 진리 를 발견했을 때, 그에 부합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Berlin, 2021, p. 116)
“루소가 한 말의 실질적인 요체는 18세기 계몽 주의의 공식 신조와 아주 많이 다르지가 않았다. 달랐던 것은 방식이었다. 달랐던 것은 기질이었다.” (Berlin, 2021, p. 116) “루소는 어쨌든 소피스트였다. 왜냐하면 그의 신조들은 여전히 이성에 호소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Berlin, 2021, p. 118)
“그의 신조들은 세상에는 모종의 확립된 체제, 모종의 선한 인간 생활, 선한 인간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여전히 호소했다. 오로지 사람들이 수세기에 걸쳐 그럭저럭 축적해온 오류들을 깨끗이 벗겨내고 사람들을 타락케 한 나쁜 사회를 제거할 수 있을 때에 만, 그들은 시간을 초월한 교훈에 부합하는 훌륭한 삶을 길이길이 살아 갈 수 있을 것이다.” (Berlin, 2021, p. 118)
“백과전서” (Berlin, 2021, p. 118) 18세기 철학자 드니 디드로를 비롯하여 백과전서(Encyclopédie. 부제는 과학, 예술, 기술에 관한 체계적인 사전(Dictionnaire raisonné des sciences, des arts et des métiers))의 편집자들로 이루어진 학파가 개혁을 통해 목표를 성취할 수 있다고 믿은것과 달리 "루소는 저주받은 상부구조 전체를 완전히 무너뜨려야 한다고 믿었다.” (Berlin, 2021, p. 118)
“만약 우리가 이런 종류의 담론을 그 시대 독일인들이 하고 있던 이야기와 비교한다면, 이 모든 것에 대한독일인들의 태도가 훨씬 더 극단적임을 알게 될 것이다.” (Berlin, 2021, p. 118) “행동 그 자체에 대한 이런 느닷없는 열정, 기존에 확립된 모든 질서에 대한 이런 증오, 우주가 차분한(아니, 굳이 차분하지 않더라도) 지각을 통해 이해할 수 있고,숙고할 수 있고 분류할 수 있고, 기술하고 마침내 활용할 수 있는 구조를 갖고 있다고 보는 모든 종류의 관점에 대한 증오,바로 이런 것들이 독일인들에게 특유하게 나타나는 것들이었다.” (Berlin, 2021, p. 119)
세상에는 본성상 그 자체로 해소될 길이 없는 그런 유형의 갈등이 존재하며 그것은 강한 자들 이 약한자들과 함께 살 수 없기 때문에 생겨나는 결과라는 것이다.
“약한자들은 저항해야 하는 것이 옳고, 강한 자들은 진압히는 것이 옳다. 따라서 갈등,충돌, 비극, 죽음, 이 모 든 종류의 공포는 우주의 본성에 불가피하게 수반된다. 이 관점은 따라 서 숙명적이고 비관적인 것으로서, 과학적인 낙관적 관점도 아니고, 어느 모로 보더라도 정신적인 낙관적 관점도 아니다.” (Berlin, 2021, p. 121) “이 견해에 따르면 신은 파리의 나긋나긋한 철학자들이나 종교와 이성을 화해시키려 애쓰고 있는 베를린의 나긋나긋한 성직자들보다 도둑, 매춘부, 죄인,술 집주인과 더 가까이에 있다. 종교와 이성을 화해시키는 일이야말로 인 간이 소중히 아끼는 모든 것을 격하하고 모욕하는 짓이다.” (Berlin, 2021, p. 121)
“그것은 18세기나 그들의 특수한 사회에 적절한 해결책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세계를 단념했고 그 세계는 원리상 해결책을 발견할 수 없는 불합리한 장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Berlin, 2021, p. 122)
낭만주의의 중요 두 인물: [[Johann Gottfried Herder|헤르더]]와 [[Immanuel Kant|칸트]]
[[Johann Gottfried Herder|헤르더]]의 신조, 이 신조는 [[Johann Georg Hamann|하만]]에게서 배움
- 첫째는 내가 앞으로 표현주의 expressionism 라고 부르고자 하는 개념이다.
- 인간의 근본적인 기능 중 하나가 표현
- 무슨 행동이건 “그 자신의 충실한 본성을 표현한다고 믿었다.” (Berlin, 2021, p. 124)
- 표현에 실패했다면 스스로를 망가뜨렸거나, 억압했거나 모종의 속박을 가했기 떄문
- 둘째는 어떤 집단에 속하는 것을 의미하는 귀속 개념이다.
- 그리고 셋째는 이상들, 참된 이상들은 대개 서로 양립이 불가능하며 화해할 수 없다는 생각이다.” (Berlin, 2021, p. 123)
18세기 미학에서는 예술 작품의 가치란 그것이 어떤 성질을 갖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이야기되곤 했다. “나는 단지 납품업자일 뿐이고, 판단되어야 할 대상은 예술 작품이지 그것의 제작자가 아니라는 생각, 예술가의 일생, 심리, 목적, 전체적인 대의 따위는 예술 작품과는 무관하다는 생각,이런 모든 생각을 수용하는 저 신조를 헤르더와 그의 추종자들은 맹렬히 거부했던 것이다.” (Berlin, 2021, p. 126) 낭만주의적 관심을 갖고 있는 독일인들이 취한 관점은 이런 것이 아니었다. 특히 하만은 더욱 아니었다.
“예술 작품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말을 거는 목소리이다. 은잔이건 음악 작품이건 시이건 심지어 법률 조항이건, 아니 그것이 무엇이건 상관없이 인간의 손에 나온 인공물은 어떤 식으로든 그것을 제작한 사람이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나 삶에 대해 갖고 있던 태도의 표현인 것이다.” (Berlin, 2021, p. 125) “이것이 표현으로서의 예술, 의사소통으로서의 예술이라는 신조이다.” (Berlin, 2021, p. 126)
“그는 어떤 사물은 개인이 만들고 또 어떤 사물은 집단이 만든다고 말한다. 어떤 것은 의식적으로 만들어지고, 또 어떤 것은 무의식적으로 만들어진다.” (Berlin, 2021, p. 127) “그가 믿은 것은 인간 집단도 식물이나 동물과 비슷한 방식으로 성장하며, 유기적이고 식물학적인 은유들 뿐 아니라 여타의 생물학적인 은유들이, 18세기 프랑스에서 과학 대중화를 이끈 사람들이 사용한 화학적이고 수학적인 은유들보다 그런 성장을 기술하는 데에 더 적절하다는 것뿐이었다.” (Berlin, 2021, p. 129)
“만약 어떤 고대 그리스인이 만든 예술 작품올 이해하고 싶다면, 어떤 예술 작품이건 아름다운 것이 되려면 반드시 지켜야 하는 시간을 초월한 규준 같은 것을 정한 다음 그 규준에 의거하여 그 그리스인의 예술 작품이 아름다운지 아닌지를 숙고하는 일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우리는 그리스 인들이 어떤 사람들이었는지, 그들은 무엇을 원했고,어떻게 살았는지 이해해야 한다.” (Berlin, 2021, p. 129)
“우리가 그리스 철학을 이해하려면 그리스의 예술을 이해해야 한다. 그리스의 예술을 이해하려면 그리스의 역사를 이해해야 한다. 그리스의 역사를 이해하려면, 그리스의 지리를 이해해야 하며, 그리스인 들이 알았던 식물들을 알아야 하고, 그들이 살았던 땅을 이해해야 하고, 기타 등등. 이것은 따라서 역사주의historicism, 진화주의evolutionism라는 전반적 개념의 출발점이 되는 셈이다. 그것은 바로 우리는 오로지 자신의 환경과 는 매우 상이한 환경을 통해서만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다는 개념이 다.” (Berlin, 2021, p. 130-1)
“이런 의미에서 [[Johann Gottfried Herder|헤르더]]는 확실히 낭만주의 운동의 아버지 중 한 명이다. 다시 말해, 그는 행동의 영역에서건 사유의 영역에서건, 통일성의 부정, 조화의 부정, 이상들의 양립 가능성 부정을 전형적인 특징으로 하는 그 운동의 아버지 중 한 명인 것이다." 헤르더는 인류가 무엇을 이루게 될 것인지는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것은 지난 2,000년 동안 견고했던 서구의 ‘영원의 철학 [[philosophia perennis]]’에서 등장한 대단히 새롭고 더 없이 혁명적이고 전복적인 외침이다.” (Berlin, 2021, p. 137)
세명의 독일 사상가
[[Immanuel Kant|칸트]] - 자유의지에 대한 시작
“루소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사물의 본성은 우리를 성나게 하지 않으며 다만 병든 의지가 그러는 것뿐이다.” [...] 그러나 18세기에는 이 말에 명백히 해당 안 되는 특정 독일인들이 있었다. 그들은 단지 사람들의 병든 의지 때문이 아니라 사물의 본성 때문에 성이 난사람들이었다. 이들중 한 명은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 [[Immanuel Kant]]였다.” (Berlin, 2021, p. 140) “칸트는 낭만주의를 증오했다.” (Berlin, 2021, p. 140) “그럼에도 불구하는 그는 마땅히 낭만주의의 아버지 중 한 명으로 여겨진다.” (Berlin, 2021, p. 141)
칸트는 과학의 신봉자였으며 본인이 저명한 과학자였다(그는 우주학자였다). [[Immanuel Kant|칸트]]는 "[[Johann Georg Hamann|하만]]을 애수에 찬 혼란스러운 신비주의자로 여겼고, [[Johann Gottfried Herder|헤르더]]의 글은 증거로 뒷받침되지 않는 방대한 일반화들, 어마어마하게 넓은 상상의 범위들 때문에 싫어했다.” (Berlin, 2021, p. 141)
하지만 그에게서, 도덕 철학에서 낭만주의의 아버지로 부를 수 있는 지점을 찾을 수 있으며 그 지점은 바로 [[인간의 자유]]라는 관념이었으며, 강박적인 핵심 원리가 되었다. 그는 가치란 인간이 스스로 생성하는 그 무엇이라고 생각했으며, 그가 가장 격심하게 혐오하는 것 중 하나가 (어쨌든 정치의 영역에서) 바로 온정적 간섭주의였다
“인간은 자유롭다. 인간은 원형적으로 타고난 자유를 지닌다. 새프츠베리 [[Shaftesbury]] 에 따르면 바로 이 자유가 나에게 내 자아의 특권을 제공하고 나를 나 자신으로 만든다.” (Berlin, 2021, p. 142)
“전 생애에 걸쳐 칸트를 끈덕지게 괴롭힌 두가지 주된 걸림돌이 있다. 하나는 인간 걸림돌이고 다른 하나는 사물 걸림돌이다.” (Berlin, 2021, p. 143)
- 인간 걸림돌: “칸트는 계몽이란 단지 자기 삶을 결정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이자 타인의 굴레에서 자기를 해방시키는 것이라고 규정한 다.” (Berlin, 2021, p. 143)
- “계몽은 인간이 성숙해져서 악한 일이 되었건 선한 일이 되었건 어쨌든 자기가 무엇을 해야 할지를 권위나 이런저런 엄한 교사들이나 국 나 부모나 보모나 전통이나 흑은 도덕적 책임의 무게가 단호하게 부과 되는 온갖 종류의 기성 가치관에 과도하게 매달리는 일 없이 스스로 결정한다는 사실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Berlin, 2021, p. 143)
- 착취 개념을 만듬
“따라서 칸트는 자신의 도덕 철학에서 타인에 의한 모든 형태의 인간 지배에 특히나 격렬하게 반대한다. 실제로 그는 악행으로서 착취 개념의 아버지이다” (Berlin, 2021, p. 144)
“인간이 달성하려고 애쓰는 목표 혹은 목적에 해당하 는 이른바 가치들이 신에게 있건 자연에 있건 어쨌거나 우리 바질에 있 을 수는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그런 가치들이 우리 바깥에 존재하면서 자체의 강한 힘으로 우리의 행위를 결정 짓는다면, 우리는 결국 그 힘의 노예가 되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Berlin, 2021, p. 146) “달리 말해, 어떤 행위를 좋거나 나쁘다고 부르거나 옳거나 그르다고 부르는 것은 결과적으로 인간에게 자유로운 자기 전념의 행위가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Berlin, 2021, p. 146)
“이것이 바로 칸트가 인간은 그 자체가 목적이라고 말할 때 의도한 바 이다. 대체 인간 말고 다른 무엇이 목적이 될 수 있겠는가? 인간은 행위의 선택자이다. 우리는 더 고귀한 무언가를 위해서만 어떤 한 인간을 희생시킬 수 있다. 그러나 최고의 도덕적 가치로 여겨지는 인간이라는 대상보다 더 고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Berlin, 2021, p. 147) → 즉 희생시킬 수 없다.
“가치는 인간의 선택 덕분에 가치가 되는 것이다.” (Berlin, 2021, p. 147)
그가 의미한 결정론이란 외부 요인 에 의한 모든 형태의 결정론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방해물, 노예화, 간섭처럼 사악한 것은 결정론이었으며 이는 인간이 자연의 손아귀에서 노예 신세로 전락 한다고 하는 (그가 보기에는) 악몽 같은사상이다.” (Berlin, 2021, p. 147)
“이를테면 만약 어떤 정념에 관해서 그것이 나보다 더 강하고, 나로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어서 굴복하고, 휘둘리고, 무력해지고, 압도된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결국 특정한 종류의 무기력한 노예 상태를 고백하고 있는 셈이다.” (Berlin, 2021, p. 148)
[[Stoicism|스토아주의자]]들에 의해 고안된 [[자유 의지]] 문제는 유럽인의 사유를 그리고 행동을 지배했다고 할 수 있다. “이 문제는 다양한 유형의 정치 이론의 형식으로도 제기된다. 예를 들면, 인간이란 이를테면 계급 구조 같은 구조 안에서 본인이 차지하는 객관적인 위치에 의해 결정되는 존재라고 믿는 사람들도 있고, 인 간은 그런 존재가 아니며 어쨌든 전적으로 그런 식으로만 결정되는 존 재는 아니라고 믿는 사람들도 있다.” (Berlin, 2021, p. 149)
“예를 들어, 그에게 아량은 악덕이 다. 왜냐하면 아량은 궁극적으로 생색이나 보호의 형식이기 때문이다.” (Berlin, 2021, p. 150)
이러한 [[Immanuel Kant|칸트]]의 도덕관은 새롭고 다소 혁명적인 자연관을 수반하는데, 이는 호의적이거나 경의를 표하던 자연에 대한 태도를 (가장 덜 형이상학적인 사상가인 [[David Hume|흄]]조차도 인간이 무언가 상태가 안 좋아질 때는(불행해지거나 정신이 나가 거나한다면) 대개 자연이 전면에 나선다고 믿는다) "자연의 여왕이라는 개념, 자연의 여신, 자애로운 그 무엇, 우리가 숭배하는 그 무엇,예술이 모방해야만 하는 그 무엇, 도덕의 원천이어야 하는 그 무엇, 몽테스키외 가 말한 것처럼 정치가 기반을 두고 있는 그 무엇 등등의 개념은 인간의 천부적인 선택의 자유를 훼손하는 것이다.” (Berlin, 2021, p. 152) "따라서 칸트에게 자연은 최악의 경우 적이고, 최선의 경우 단지 우리가 형상을 입히는 중립적 소재일 뿐이다.” (Berlin, 2021, p. 153)
“어떤 의미에서 칸트는 여전히 18세기 계몽주의의 아들이었다.” [...] “한때 칸트는 올바른 답변 을 제공할 수 있을 정도로 계몽되었거나 많은 경험을 했거나 도덕적으 로 고고한 사람들은 오로지 소수에 불과하다고 믿었다” (Berlin, 2021, p. 154-5) [...] “하지만 어떤 능력을 결여하건 상관없이 모든 인간은 바로 이 질문에 대한 이성적인 답변을 발견할 수 있다. 나는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그리고 이에 대한 모든 이성적인 답변은 반드시 일치해야 한다.” (Berlin, 2021, p. 155)
“칸트가 자신의 건전한 지면에 등장시켜 가능한 최대의 노기와 열성을 갖고 논박했던, 절반은 형이상학적이고 절반은 종교적인 이 개념은 장차 독일의 정치와 독일의 정신 둘 다에 지극히 폭력적인 효과를 불러오게 된다” (Berlin, 2021, p. 176)
[[Friedrich Schiller|실러]] - 예술과 자유주의의 연결
18세기 말 칸트의 이론에 변형이 생기기 시작한다. 그의 충실한 제자 [[Friedrich Schiller|실러]]는 칸트가 그랬던 것처럼 의지, 지유, 자율성, 제 자신으로서의 인간이라는 발상에 중독된 인물이다.” (Berlin, 2021, p. 156) “하지만 실러는 그런 견해와는 정반대로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유일한 요소는 자연을 이겨내고, 자연에 형상을 부여하고, 자연을 분쇄하고,자연을 도덕적으로 규제되는 아름답고 속박 없는 자신의 의지에 자연을 예속시킬 수 있다는 사실에 있음을 끊임없이 호소하고 있다.” (Berlin, 2021, p. 156)
칸트의 자유에 대한 개념은 시나 조형 예술 둘 다에서 낭만주의 예술에 매우 강력한 영향을 미쳤으며 [[Immanuel Kant|칸트]]를 독해했을 때 나올 수 있는 결과 그 이상이었다. “비극을 초래하는 것은 바로 도전(순응하라는 유혹에 대한 도전)이다(그리고 실러의 경우에 그것은 도덕적인 도전이다. 다른 그 어떤 도전이 아닌, 우리가진지하게 전념 하는 어떤 이상의 기치하에 시도되는도전인 것이다).” (Berlin, 2021, p. 157)
“그리고 예술의 목적, 적어도 인간에 관심이 있는 극예술 의 목적은 사람들에게 가장 인간적인 방식으로 처신하는 모습이란 어떤 것인지 보여 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실러의 신조이다. 이 신조는 칸트 에게서 직접 도출되는 것이다.” (Berlin, 2021, p. 159)
“자연 자체는 인간에게 무심하다. 자연 자체는 도덕과 무관하다. 자연 자체는 우리를 가장 무정하고 섬뜩한 방식으로 파괴한다” (Berlin, 2021, p. 159) “실러는 칸트의 해결책을 거부했다. 근본적인 이유는 그 가 보기에 비록 칸트의 의지가 우리를 자연으로부터 해방시키기는 하지 만 칸트는 우리를 매우 협소한 도덕의 길, 너무 모질고, 너무 제약이 많 은 칼뱅주의의 세계로 몰아넣었기 때문이었다.” (Berlin, 2021, p. 160)
“대략적으로 말해서 이것이 실러의 신조이며, 이것이 장차 19세기 예술에서 제 역할을 맡게 될 이른바 위대한 죄인이자 우월한 인간이라고 하는 저 유명한 신조의 시작이다.” (Berlin, 2021, p. 161-2) 쓸모있게 다를 수 없는 사회에서 속해 있기 때문에 쓸모없이 죽는 것 = 잉여 인간.
"그들이 잉여적인 이유는 그들을 둘러싼 사회의 도덕성에 비해 우월한 그들의 도덕성이 그들이 살고 있는 사회의 속물들, 노예들, 타율적인 피조물들이 제기하는 무시무시한 반대와 싸워가며 그 자신을 내세울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Berlin, 2021, p. 162)
“이것이 특히 러시아 문학에서 찬양받은 기나긴 잉여 인간 계보의 출발점이다.” (Berlin, 2021, p. 162)
도스토예프스키의 이른바 위대한 죄인의 시작
“만약사회가 나쁘고, 합당한 도덕성을 획득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방해받고,어떤 일도 될 일이 없다면, 만약 진정 그러하다면 그 사회를 타도하고 파멸시켜 세상에서 사라지게 해야 하며 그런 사회에서라면 어떤 범죄든 다 허용된다고 말하는사람들의 계보다.” (Berlin, 2021, p. 162)
“이것은 낭만주의 운동의 위대한 주제 가운데 하나로서, 만약 우리가 이 운동이 연대상 발생 시기는” (Berlin, 2021, p. 163) → “1760년대 말로 다가갈 무렵 레싱은 《미나 폰 바른헬름 Minna von Bamhdm》이라는 희곡을 썼다” (Berlin, 2021, p. 163) 이 희극의 주인공이야말로 사실상 [[Friedrich Schiller|실러]]가 사람들에게 성취하기를 바란 전부를 가진 사람이다.
“[이 희극의 주인공인 장교] 텔하임은 사회가 부당하게 대우한 사람이며, 자신의 특정한 이상인 명예와 고결성을 극단적인 형태로 열렬히 추구한 사람으로서 철저히 ‘참여적이고 engage’ 자신의 이상에 전념하는 사람이다.” (Berlin, 2021, p. 164)
따라서 [[Gotthold Ephraim Lessing|레싱]]의 미나 폰 바른헬름의 텔하임과 1769년대, 그리고 [[Friedrich Schiller|실러]]의 도적 떼 에서 나오는 카를 무어 1780년대 초가 바로 낭만주의의 영웅이 진정으로 등장하는 순간이다. 이를 통해 계몽주의의 전통이라 불릴 수 있는, 사물의 어떤 본성이 존재하며 공부하고 이해하고 알아내야하며 스스로를 파괴하든 조롱하는 대가를 통해서라도 그 본성에 적응해야한다는 전통과의 단절(자신이 전념하고자 하는 가치에 전념하며 필요하다면 영웅답게 목숨을 버릴 줄도 알아야한다는 생각으로의 단절)을 나타낸다.
“다른 말로 하면,순교나 영웅주의 같은 개념들이 그 자체로 숭배할 만한 성질을 가진 것으로서 그 무렵쯤 에 모습을 드러낸 것처럼 보인다.” (Berlin, 2021, p. 165)
[[Friedrich Schiller|실러]]의 근본적인 관점은 인간은 세 단계를 겪어 나간다
- “‘자연적 필요국가 Notetaat” (Berlin, 2021, p. 165)
- 재료충동에 의하여 필요에 의해 통치되는 국가 = 야만적이라고 부른 국가이다
- 이성국가 Vernunftstaat
- “이 단계에 이른 국가에서는 사람들이 이전과는 반대로 자신이 처한 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매우 엄격한 원칙을 채택하고, 그런 원칙을 일종의 물신 숭배의 대상으로 만든다.” (Berlin, 2021, p. 166)
- 경이로운 인간적 통일체
- 정념과 이성이 갈라서지 않고 자유가 필연과 갈라서지 않음.
- “옛날 옛적에 우리는 완전체였고, 우리는 그리스인들이었다(이 것은그리스인에 대한 위대한 신화로서 역사적으로 볼 때무척 불합리한 것임에 틀림이 없으나, 이런 신화가 실러, 활덜린, 헤겔, 슐레겔, 마르크스등 정치적 무력감에 빠져 있던 독일인들을 지배했다).” (Berlin, 2021, p. 169)
2에서 3으로 가기 전, 문화라는 것이 발생 (바로 노동 분업, 불평등, 문명화) 이러한 원형적인 경이로운 통일체로 다시 해방되기 위해선 반드시 예술을 통해 성취해야하며, 자유롭게 상상하고 자유롭게 발명하는 사람의 태도를 가져야 한다.
“실러는 ‘놀이충동 Spieltrieb’에 관해 말한다. 그는 인간이 스스로를 해방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놀이하는 사람의 태도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Berlin, 2021, p. 167) [...] “그에게 예술은 놀이의 형식이며, 그는 자기에게 주어진 난제는 한편으로는 회피할 길 없이 긴장을 야기하는 자연의 필연성과, 다른 한편으로는 인생을 협소하게 축소시키는 엄격한 율법을 화해시키는 일이라고 설명한다.” (Berlin, 2021, p. 167)
[[Friedrich Schiller|실러]]의 생각이 대략 목적지로 삼고 있는 종류의 유토피아는
“우리가 만든 것은 모든 게 다 우리 것이고 우리가 만든 것 은 그 어떤 것도 우리를 제약하지 않는다. 따라서 오로지 우리가 스스로 규칙에 복종하는 피조물로 변모할 수 있을 때에만 우리는 구원받는다.” (Berlin, 2021, p. 167) [...] 달리 말해 우리가 규칙 복종의 필연성을 거의 직감적이고, 완벽히 자유롭고, 조화롭고, 자발적이고, 자연스러운 모종의 실행으로 전환할 수 있을 때에만, 오로지 이렇게 할 수 있을 때에만, 우리는 구원을 받는다.” (Berlin, 2021, p. 168)
한마디로, 예술가란 자기가 만든 규칙에 복종하는 자라는 것이다. 그들은 규칙을 고안하고, 창조할 대상들을 궁리한다. 소재는 자연이 제공할 수도 있지 만, 다른 모든 것은 그들이 만든다.” (Berlin, 2021, p. 168) "즉, 이상, 목적, 목표는 직관이나 과학적 수단이나 신성한 문헌의 독해나 전문가 혹은 권위자의 말을 경청함으로써 발견되는 것이 아니다.” (Berlin, 2021, p. 169) “이상은 결코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고안하는 것이다.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예술이 생성되듯 생성하는 것이다.” (Berlin, 2021, p. 169)
한때 완전체였던 인간은 (예시: 그리스인) 문화가 발생하였고 “따라서 이제는 우리의 인간성을 다시 주장해야 하며 우리 자신의 이상들을 창안해야 한다. 그런 이상들은 창안된 것이기 때문에 자연과 대립적이며 자연의 일부가 아니라 오히려 자연과 충돌한다.” (Berlin, 2021, p. 169) “이상주의, 즉 목적의 창안은 곧 자연과의 단절을 뜻한다.” (Berlin, 2021, p. 170)
[[Johann Gottlieb Fichte|피히테]] 자유 개념에 추가 해설
칸트의 사도이며 자유라는 개념에 특히나 더 열정적인 해설을 추가한 인물
[[Johann Gottlieb Fichte|피히테]]는 우리가 존재로서 무엇을 해야하고 어떻게 해야하는 질문에 지식의 영역에서 요청한다면 그 답을 결코 얻지 못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 이유는 단지 지식이란 늘 더 큰 어떤 지식을 미리 전제하기 때문이다” (Berlin, 2021, p. 171) “이것은 참이 아니라고 피히테는 말한다. 우리의 삶은 사변적인 지식에 의존하지 않는다. 삶이란 대상들의 본성을 초연히 사색하는 데서 시작하지 않는다. 삶은 행동과 더불어 시작한다.” (Berlin, 2021, p. 171)
“([[William James]]와 [[Henri Bergson|베르그송]]이 반복해서 주장하듯) 지식은 그저 도구일 뿐이다. 지식은 효율적인 삶과 행동이라고 하는 목적에 도움을 주기 위해 자연이 제공한 도구일 뿐이다. 지식은 생존법을 아는 것이며,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그렇게 될지, 어떻게 사물들을 우리의 용도에 맞게 길들일지를, 다른 말로 하면, 한마디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그리고소멸하지 않기 위해 무엇을 해야할지를) 모종의 수면 상태에서 사실상 본능적인 방식으로 아는 것이다.” (Berlin, 2021, p. 171)
““우리는 알기 때문에 행동하는 게 아니다. 행동해야 하므로 아는 것이다.”” (Berlin, 2021, p. 172)
사물들이 지금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은 그것들이 그 자체로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이 그런 방식으로 대하거나 목적에 의해 영향받기 떄문이다. → 일종의 실용주의 [[Pragmatism]]
누가 주인인가? 자연인가 나인가? 목적에 의해 내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나에 의해 목적이 결정된다. “나는 자연이 제공하는 것을 내가 꼭 받아들여야만 하기 때문에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나는 내가 그것을 믿을 것이기 때문에 믿는다.” (Berlin, 2021, p. 172) “이것은 경험이란 내가 행동함으로써 내가 결정한 그 무엇임을 매우 극적이고 매우 시적인 방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Berlin, 2021, p. 172)
“그래서 [[Friedrich Schlegel|프리드리히 슐레겔]]은 이렇게 말했다. “도적들은 내가 낭만주의적인 자들로 만들기 때문에 낭만주의적인 자들이다. 그 무엇도 본성상 낭만주의적인 것은 없다:” (Berlin, 2021, p. 173)
문화는 지식이고 그 지식이 폭력이 권장할 만한 게 못 된다는 것을 입증했기 떄문에 18세기에 문화는 폭력의 억제책이었다. 하지만 [[Johann Gottlieb Fichte|피히테]]는 유일한 폭력 억제책은 문화가 아니라 모종의 도덕적 쇄신이다. “인간은 무언가가 되어서 무언가를 해야 한다.”” (Berlin, 2021, p. 173)
“피히테의 전체적인 생각은 인간이란 일종의 지속적 행위 그 자체라는 것이다” (Berlin, 2021, p. 173) “단지 삶이나 자연이 제공하는 것만 받아들이는 인간은 죽은 자이다.” (Berlin, 2021, p. 174)
우리는 몸을 마음대로 할 수는 없지만 정신은 그럴 수 있으며, "순수한 정신이란 모종의 초월적 존재자이자(신에 더 가까운) 한 가운데서 타오르는 횃불인 것이다. 우리 모두는 그 횃불에 동 참한 개별적인 불꽃들이다. 이것은 최소한 뵈메 [[Jakob Böhme]] [16-7세기 독일의 신비주의 사상가]로 거슬러 올라기는 신비적인 개념이다” (Berlin, 2021, p. 174)
나폴레옹의 침략과 독일 민족주의 정서의 전반적인 부상 이후 변하기 시작한 [[Johann Gottlieb Fichte|피히테]] → 인간은 다른 인간에 의해 인간으로 만들어지는 것 이다. 인간은 교육과 언어를 통해 인간으로 만들어진다고 믿은 [[Johann Gottfried Herder|헤르더]]가 맞다고 생각하게되며 “이렇게 해서 피히테가 도착한 종착점은 열광적인 독일의 애국자 겸 민족주의자이다.” (Berlin, 2021, p. 175)
칸트에 의해 탄생한 자유의지 개념은 예술과 함께하며 스스로 만들어가는 가치 창조와 더불어 인간을 가치 창조자의 위치에서 자연과의 결별을 선언한다. 스스로를 새롭게 창조하며 우리는 자유로워지며 전대미문의 드높은 탁월성에 이르고자 열망하게된다.
칸트의 도덕 철학에서 미학으로 그리고 정치적인 측면으로의 확장
이 운동에 가장 권위 있게 글을 쓴 [[Friedrich Schlegel|슐레겔]]에 따라 분석한 심원한 영향 세 요인
- [[Johann Gottlieb Fichte|피히테]]의 지식학
- [[David Hume|흄]]과 18세기 경험주의자들의 관점을 수용하여 "자아란 직접적 지각의 대상이 되는 어떤 ‘것’이 아니라 아마도 연쇄적인 경험들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여겨지며 바로 그런 것들로부터 인간의 성격과 인간의 역사가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Berlin, 2021, p. 179)
- “피히테는 인지 활동 중에 자아가 모습을 드러내서는 안 되는 게 너무도 당연하다는 신조를 강하게 주장했다.” (Berlin, 2021, p. 179) 왜 주장이 이렇게 갔지?
- “자연의 물질적 대상을 바라볼 때나 음악이나 다른 무언가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나 혹은 우리 앞에 어떤 사색의 대상이 존재해서 거기에 완전히 푹 빠져드는 그 어떤 다른 종류의 과정 중에 처해 있건 간에, 그럴 때 당연히 우리는 그렇게 푹 빠져 있는 자로서 자기 자신을 의식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른다” (Berlin, 2021, p. 179) [[References/Concepts/Atmosphere|Atmosphere]]와 비슷한 맥락이 여기서 나오는구나
- “우리는 모종의 저항 같은 것이 있을 때나 자아를 의식하게 된다.” (Berlin, 2021, p. 179)
- 인식, 안슈토스 [[Ansto]]
- 이건 하이데거?
- “그 비非자아(이해하려고 하고 느껴 보려고 지배하거나 고쳐보려고하는)와는 다른 어떤 존재자로서 우리의 자아를 의식 하게 하는 것이 바로 그 방해물이 미친 영향이다.” (Berlin, 2021, p. 180)
- 비목적격으로의 나 I 와 self의 의미의 목적격 표현인 "me"는 다르다. me는 모종의 내성의 대상이자 연구의 대상이고 심리학, 사회학 등 학문적 논의의 대상이다.
- 우리는 나와 내가 원하는 것 사이에, 나와 내가 되고자 소망하는 것 사이에, 나와 내가 나의 인격을 부과하고 싶어 하나 그러려는 만큼 그 부과에 저항하는 재료 사이에 모종의 충돌 혹은 불일치가 발생한다는 시실을 의심할 수 없다는 것이다.
- = 안슈토스 [[Anstoβ]]’, 즉 동인動因
- “이에 의하면,내가 설명하려 한 바와 같이, 시간을 들일 만한 가치가 있는 유일한 활동은 개개의 특유의 자아에 씌워진 껍질을 벗겨 내는 일이며 그러한 자아가 수행하는 창조적 활동, 물질에 대한 형상의 부과, 다른 사물들에 대한 통찰, 가치의 창조와 그런 가치에 대한 헌신이다.” (Berlin, 2021, p. 181)
- 프랑스 혁명
- 프랑스 혁명은 평화로운 보편주의에 입각하여 인간의 불행을 일소하겠노라는 완벽한 해결책을 약속했으나 의도대로 진행되지 않음
- 특히 나폴레옹 전쟁에 따른 결과로서 그것이 상처받은 민족 감정의 방대한 분출로 이어졌고 그런 분출이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개의치 않는 민족적 의지의 천명이라는 점에서 낭만주의의 흐름에 자양분이 됨 (Berlin, 2021, p. 203)
- "따라서 그 혁명은 이성, 평화,조화, 보편적 자유, 평등, 해방, 우애 같은 것들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던 것이 전혀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인간사에서 빚어지는 폭력적이고 간담 서늘한 예측 불가의 변화, 군중의 비합리성, 영웅들 개개인이 보여준 엄청난위력, 이들 군중을 지배하며 온갖 다양한 방식으로 역사의 흐름을 바꿀 수 있었던 선하거나 악한 위대한 인물들이 주목을 받았다.” (Berlin, 2021, p. 203-4)
- 우리가 자연이든 인간이 든 뭐든 간에 그런 것들을 너무 많이 교체하려 한다면 소위 ‘인간 본성’ 이나 ‘사회의 본성’이나 ‘무의식의 어두운 힘’이나 ‘생산력’ 혹은 ‘이념’ 등으로 불리는 그 무엇이(여기서 이거대한존재의 이름이 무엇이냐는중요 치 않다) 우리를 강타하러 나설 것이고 결국 우리를 때려 고꾸라뜨릴 것 이라는 생각들
- "스스로를 낭만주의자라 평하지 않았을 유럽의 대단히 많은사람들의 상상력을 부식시켰고 더불어서 마르크스주의 신정론, 헤겔주의 신정론, 슈펭글러의 신정론, 토인비의 신정론, 그리고 위대한우리 시대의 다른 많은 신학적 저술에서 보는 바와 같은 온갖 종류의 신정론 [[theodicy]]의 흐름에 자양분이 되었다.” (Berlin, 2021, p. 206)
- 그리고 [[Johann Wolfgang von Goethe|괴테]]의 유명한 소설 《빌헬름 마이스터 Wilhelm Meister》
- 이 소설은 추정컨 대 예술가 괴테의 창조적 자서전일 것이다.” (Berlin, 2021, p. 207)
- 매우 예리한 전환이 존재: “이를테면 괴테는 물의 온도나 특수한 종류의 정원에 대한 한 편의 건전한 산문 혹은 과학적 기술로부터 갑자기 이런저런 종류의 비밀스럽고, 시적이고, 서정적인 설명으로 비약하며 느닷없이 시 속으로 뛰어들더니, 완벽하게 운율적이지만 그러면서도 통렬하기 그지 없는 산문으로 이전 못지않게 예리하고 이전 못지않게 신속하게 되돌아온다” (Berlin, 2021, p. 207)
- 하지만 괴테는 보헤미안들을 뿌리 없는 삼류 예술가들로 보았고 낭만주의자들은 속물이라며 바이마르 대공에 대한 아부를 경멸했다. “당돌하고 독창적인 천재로 출발했으나 결국은 비단을 휘감은 궁정 대신으로 끝났다는 것이다.” (Berlin, 2021, p. 208)
“만약 자아가 더 이상 해당 개인과 동일시되지 않고 공 동체나 교회나 국가나 계급 같은 어떤 초인격적 존재와 동일시된다면, 그런 자아는 전진 앞으로 돌격해 들어가는 거대한 의지가 될 것이고 자신의 특별한 인격을 외부 세계와 그것의 모든 구성 요소에 부과할 것이 다.” (Berlin, 2021, p. 181)
“피히테의 근본적인 구분으로서 1770년대 후반에서 1780년 초반 언저리에 태어난 수 많은 젊은 독일인들의 마음을 홀려 놓았다.” (Berlin, 2021, p. 184) “근본 착상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cogito ergo sum]] ’ 가 아니라 ‘나는 의욕한다, 고로 존재한다 [[volo ergo sum]] 이다” (Berlin, 2021, p. 184)
[[Johann Gottlieb Fichte|피히테]]보다 어린 동시대 인물로서 다소 비슷한 면도 있지만 어떤 면에서는 심원한 차이를 보이는 [[Friedrich Wilhelm Joseph von Schelling|셸링]]의 신조에 관해 몇 마디 언급하고자 한다(물론 셸링을 그렇게 대충 언급하고 지나가는 것은 부당한 처사이기는 하지만).” (Berlin, 2021, p. 184) “[[Friedrich Wilhelm Joseph von Schelling|셸링]]은 콜리지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사상가였고 독일 사상에도 마찬가지로 깊은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오늘날 그를 읽는 사람은 거의 없다. 부분적인 이유를 들자면 오늘날 보기에 그의 저작들은 대부분 납득하기 어려운 건 둘째 치고 너무나도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Berlin, 2021, p. 184)
“어느 정도는 칸트도 마찬가지지만 피히테의 관점에 따르면 자연이란 딱 들어맞는 어떤 조화의 대상이라기 보다는 죽어 있는 재료로서 틀 속에 집어넣어져야 하는 대상이다. 셸링에게 자연(신비주의적인 생기론에 따라)은 그 자체로 살아 있는 그 무엇으로서 정신적 자기 발전의 일종이다.” (Berlin, 2021, p. 184)
“그가 말한 것처럼, 가장 신비로운 시초에 어둠에서 출발하여 무의식적 의지를 발전시켜 나간 것이 점차 자의식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자연은 무의식적인 의지이다. 인간은 그 자신에 대한 의식에 도달한 의지이다” (Berlin, 2021, p. 186)
- 바위와 땅 같은 것은 전면적인 무의식 상태의 의지이다
- 그런 다음 식물이 생겨나고 뒤이어 동물 → 점차 진보하는 자의식, 모종의 목적 실현을 향해 점차 진보하는 의지의 박동
- 인간은 분투하기 시작하고 자기가 얻어 내려고 분투 중인 대상을 자각하기 시작
[[Friedrich Wilhelm Joseph von Schelling|셸링]]의 신조, 신 = 의식의 자기 발전 원리 = 알파 무의식, 오메가 충만한 의식 → [[Henri Bergson|베르그송]]이 제기했으며 [[Friedrich Wilhelm Joseph von Schelling|셸링]]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음 → “이 신조는 독일의 미학과 예술 철학에 매우 심원한 영향을 끼쳤다” (Berlin, 2021, p. 186) → “예술가의 기능은 자기 속으로 더욱 깊게 파고들어 가는 일 = 자기 안에서 "꿈틀대는 어둡고 무의식적인 힘들을 더욱 깊게 파고들어야 한다. 가장 고통스럽고 폭력적인 내면의 투쟁을 통해 그런 힘들을 의식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그것이 바로 셸링의 신조이다. 자연도 이런 일을 한다.” (Berlin, 2021, p. 186-7) → "전적으로 의식적이지는 않은 생명의 맥박을 전달한다는 점에서 자연과 유사한 그런 작품들이다” (Berlin, 2021, p. 187) → “예술 작품에서 생명이란 우리가 자연에서 존중하는 것들, 이 른바모종의 권능, 힘, 에너지, 생명, 만개하는 활력 등과 유사한 것이며 또한 그런 것들과 예술 작품이 공유하고 있는 모종의 특질이기도 하다.” (Berlin, 2021, p. 187) → 우리는 작업에서 겉 모습 뿐만이 아닌 "예술가 본인도 완전하게 자각하지 못했 을 수 있는 그 무엇도 보기 때문이다” (Berlin, 2021, p. 187)
“낭만 주의의 신조는 실재를 향한 열망, 우리를 둘러싼 우주를 향한 무한한 열망이 존재하며, 무한하고 결코 소진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어서 유한한 것들이 아무리 그것의 상징이 되고자 노력해도 결코 그럴 수 없다고 말 한다” (Berlin, 2021, p. 191) 분위기는 자연인가? 무한하고 소진될 수 없는 것인가? 아니 나는 그것과 자연을 동일시하지 않는다 (그것은 이상적인 것도 이겨야하는 것도 탈출해야하는 것도 아니다)
“이 정신의 박동이란 또한 낮은 차원에서는 자연의 박동이기도 하므로, 예술 작품은 그 것을 특정한 자연 현상으로 바라보거나 귀 기울이는 사람에게 동일한 생기를 불어넣는 효과를 준다.” (Berlin, 2021, p. 187-8) “이것이 근본적인 낭만주의의 예술 신조, 반계몽주의적인 예술 신조이다.” (Berlin, 2021, p. 188)
“[[Johann Gottlieb Fichte|피히테]]의 의지 이론과 [[Friedrich Wilhelm Joseph von Schelling|셸링]]의 무의식 이론, 이 두 이론의 조합으로부터 출현한 최초의 위대한 신조는 이른바 상징주의 [[symbolism]] 이다.” (Berlin, 2021, p. 188-9)
“상징주의는 모든 낭만주의 사상의 중심에 있으며, 이 운동의 모든 비평가들은 이 신조에 늘 주목해 왔 다.” (Berlin, 2021, p. 189) ==이거 그리드와 연결 [[@krauss_grids_1979]]==
- 규약적인 상징
- “규약적인 상징은 어떤 어려움도 야기하지 않는다. 이런 부류의 상징은 무언가를 의미하려는 목적으로 고안된 것들이며, 어떤 상징이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는 규칙으로 정해져 있다.” (Berlin, 2021, p. 189)
- 그와는 다소 다른 종류의 상징
“하지만 예를 들어, 사람들의 심금을 자극하며 바람에 흩날리고 있는 저 국기는 무슨 의미의 상징인지, 혹은 프랑스 국가 마르세예즈는 무슨 의미를 담고 있는 상징인지, 혹은 조금 더 나아가서, 특유의 방식으로 건립된 고딕 성당은 종교 예식이 치러지는 건물이라는 기능과는 전혀 별개로 그 안에 거주하고 있는 그 특유의 종교에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신성한 춤은 무슨 의미인지, 혹은 온갖 종류의 종교 의례가 다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카바 신전의 석신이 무슬림에게 어떤 의미에서 위대한 상징이 되는 것인지 묻는다면, 그 대답은 이럴 것이다. 그런 것들이 상징하는 것은 말이나 다른 어떤 방식으로 도 표현할 수가 없다” (Berlin, 2021, p. 190)
“감정은 새들의 노랫소리에도 자극될 수 있다. 감정은 노을이 자극할 수도 있다 그러나 노을은 상징이 아니며 새들의 노래는 상징적이지 않다. 하지만 신도들에게 성당은 상징이며,종교 의례도 상징이고, 성체를 들어 올리 는 것도 상징이다.” (Berlin, 2021, p. 191) 이 말은 분위기도 상징성을 자극 하는 것일까?
“셸링이나 낭만주의자들이 일반적 으로 믿었던 것처럼, 비유를 정말로 믿으면서 비유적인 양식이 유일하 게 심오한 발언의 양식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볼 때 어떤 비유가 자체의 의미 말고 다른 무언가를 가리킬 때, 그 비유가 가리키는 그 무언가는 애 초에 가정한 대로 말로는 그 자체 진술이 불가능한 것이다. 비유를 사용 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며. 비유와상징이 내가 전달하고 싶은 것 을 전달하려 할 때 내가 갖고 있는 유일한 양식일 수밖에 없는 이유도 바 로 그것이다” (Berlin, 2021, p. 192)
“나는 비물질적인 무언가를 전달하 고 싶은데, 그러기 위해 물질적인 수단을써야 한다. 나는 표현이 불가능 한 무언가를 전달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 표현을 사용해야 한다. 나는 어쩌면 무의식적인 무언가를 전달해야하는데 그러기 위해 의식적인 수단을 사용해야 한다. 나는 성공할 리 없고 성공할 수 없다는 것도 이미 안다. 따라서 내가 할수 있는 일은 어떤 점근적인 접근을 통해 점점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뿐이다.” (Berlin, 2021, p. 192)
“이것은 깊이라고 하는 개념과 관계가 있다. 깊이라는 개념은 철학자들이 거의 다루지 않는다.” (Berlin, 2021, p. 192) “내가 이 은유를 통해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한 상태로 전달하고자 애쓰고 있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가? 그것은 여전히 은유로 남는다.” (Berlin, 2021, p. 193) “깊이라는 말로 내가 의미하는 바는, 비록 그들이 이런 이름들을 직접 내걸고 논의한 것은 아니지만, 소진 불가능성, 포괄 불가능성이다.” (Berlin, 2021, p. 193) 아무리 말을 길게 하더라도 소용이 없다. 무슨 말을 하든, 나는 늘 끝에 가서 말줄임표로 세 개의 점을 찍어야 한다.” (Berlin, 2021, p. 194)
“그런 까닭에 확실히 ‘심오하다’의 용법 중 하나는 바로 이 개념 즉, 환원불가능성 개념을 환기하는 것이다.” (Berlin, 2021, p. 194)
“이런 생각이 두 가지 매우 흥미롭고 강박적인 현상으로 이어지는데, 이 두 현상은 19세기만이 아니라 20세기에도 사람들의 사유와 감정에서 아주 잘 나타난다.” (Berlin, 2021, p. 196)
- 노스탤지어
- “노스탤지어는 무한은 결코 소진될 수 없는 것임에도 우리가 그것을 한눈에 담아 보려고 애쓰는 중이기 때문에, 우리가 무슨 일 을 해도 만족하지 못하리라는 사실에서 기인한다.” (Berlin, 2021, p. 196)
-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낭만주의자들의 무한한 ‘동경 [[Sehnsucht]] ’ 이며. 노발리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파란 꽃의 탐색이다. 파란 꽃의 탐색이란 무한을 나 자신에게로 흡수하려는 시도이거나, 내 자신을 무한과 일체가 되게 하려는 시도이거나, 내 자신을 무한 속으로 용해해 버리려 는 시도이다” (Berlin, 2021, p. 196-7)
- 노스탤지어는 계몽주의의 특별한 공헌으로 간주되는 것과는 정반대에 위치
- 지속적으로 움직이며 변화하며 무한한 것을 정지하지 않는 것을 부단한 파도와 같은 것을 기술해 보려고 시도조차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우리는 그런 것을 기술하려는 시도를 멈출 수가 없다. 왜냐하 면 그 시도를 멈춘다는 것은 표현의 중단을 의미하고 표현의 중단은 곧 삶의 중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Berlin, 2021, p. 198)
- “우리의 본성을 표현한다는 것은 곧 우리가 우주와 맺고 있는 관계를 표현하는 것이다. 우리가 우주와 맺고 있는 관계란 표현이 불가능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것을 표현해야 한다.” (Berlin, 2021, p. 198) “이것이 바로 전형적인 낭만주의의 노스탤지어이다. 만약 그들이 찾고 있는 그 고향과 그 조화, 그들이 이야기하는 그 완벽성이 그들에게 혹시라도 허락될 수 있는 것이 었다면, 그들은 그것을 거부했을 것이다. 원리상, 그리고 정의상 그것은 접근은 할 수 있으되 이해할 수는 없는 그 무엇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실재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Berlin, 2021, p. 198)
- 망상증
- “낭만주의의 낙관적인 형태가 존재하는데, 이런 형태의 낭만주의에서 낭만주의자들은 전진하고” (Berlin, 2021, p. 199) “하지만 이와 관련해서는 일정 정도 20세기를 사로잡고 있는 또 다른 더 비관적인 형태가 있다.” (Berlin, 2021, p. 199)
- “개개인이 아무리 간절하게 스스로를 해방시키려 애쓴다 하더라도 우주가 그런 손쉬운 방식으로 길들여질 리 없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배후에 무언가가 있다 무의식 혹은 역사의 저 깊숙한 어둠 속에 무언가가 존재하는 것이다.” (Berlin, 2021, p. 199-200)
- “하지만 [[Arthur Schopenhauer]] 같은 비관주의자들은 그것은 단지 정처 없는 의지라고 하는 한량없이 큰 불가해한 대양이며 우리는그저 그 대양 위에 떠 있는 작은 보트처럼 정처 없이 출렁거리고 있는 것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Berlin, 2021, p. 200)
- “이 망상증은 온갖 종류의 다른 형태로 나타나며 때로는 훨씬 더 노골적인 형태를 띠기도 한다. 예를 들면, 온갖종류의 역사속 음모론을 찾 아다니는 형태를 취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아마도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어떤 힘이 역사를 주물렸으리라 생각하기 시작한다.” (Berlin, 2021, p. 200)
- “우리는 이런 음모론적 시각을 통해 숨어 있는 적들을 수색하고 때로 는 경제 요인, 생산력,계급전쟁(마르크스의 경우처럼) 같은 더 큰 개념들 을 찾아내려고도 한다. 혹은 우리보다 역사의 목표를 훨씬 더 잘 이해하는 동시에 우리를 속이고도 있다는 이른바 이성의 간지 혹은 역사의 간지처럼 훨씬 더 모호하고 훨씬 더 형이상학적인 개념(헤겔의 경우처럼)을 찾아 나서기도 한다.
[[Friedrich Hegel|헤겔]]은 이렇게 말한다. “정신은 우리를 속인다, 정신은 계략을 꾸민다, 정신은 거짓말을 한다, 정신은 승리한다.” 그는 대략 그러한 정신을 일종의 거대하고 아이러니하고, 아리스토파네스적인 힘으로 여긴다.” (Berlin, 2021, p. 201)
“이것 역시 하나의 낭만주의적 사고방식이다. 왜냐하면 일단 우리 바 깥에 더 큰 무언가,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 손에 넣을 수 없는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생각을 받아들이고 나면 그것을 향해 사랑 혹은 두려움의 감정을 갖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두려움의 감정을 갖는다면, 그 두려움은 망상증이 된다.” (Berlin, 2021, p. 201) “이 망상증은 19세기에 지속적으로 쌓여 간다” (Berlin, 2021, p. 201)
==“[[Arthur Schopenhauer|쇼펜하우어]]에게서 한층 높게 쌓이고, [[Richard Wagner|바그너]]의 작품들을 지배하더니, 20세기의 온갖 종류의 작품들에서 어마어마한 절정에 도달한 것이다.” (Berlin, 2021, p. 201)== “[[Franz Kafka|카프카]] 같은 작가들의 작품은 방향을 상실한 불안, 공포, 저변에 깔린 근심에 대한 독특한 감각으로 가득 차 있다.” (Berlin, 2021, p. 202) “이런 특징은 낭만주의 초기 작품들에도 아주 잘 나타난다.” (Berlin, 2021, p. 202) “그는 그 함정에서 벗어나려 발버둥 친다. 그는 더 많이 죽이고, 분투하고, 싸우다가, 멸망한다.” (Berlin, 2021, p. 202)
“낭만주의자들은 이런 식으로 신비로운 낙관주의와 섬뜩한 비관주의라는 양극단을 오가는 경향을 보이며, 이것이 그들의 글쓰기에 독특한 종류의 들쭉날쭉한 성질을 제공 한다.” (Berlin, 2021, p. 203)
“그러나 그들의 개인적인 인간관계와는 완전히 별개로, 그들의 인생관을 담고 있으면서 괴테와 헤겔에 게 깊은 충격을 안겨 준 위대한 소설은 [[Friedrich Schlegel|프리드리히 슐레겔]]이 18세기 말에 선보인《루친데 Lucinde》였다.” (Berlin, 2021, p. 210) 에로틱한 측변과 자유로운 관계에 대한 묘사 등등으로 깊은 충격을 주었고 “그것이야 어쨌건 간에, 하여튼 《루친데》의 목적은 관례를 깨뜨리는 것이었다. 깰 수 있는 곳에서라 면 어디서든 반드시 관례를 깨야 한다.” (Berlin, 2021, p. 212)
[[Ludwig Tieck]] 티크는 《장화 신은 고양이 Puss in Boots〉〉라는 희곡을 쓰는데 이 작품은 루이지 피란델로 Luigi Pirandello[19~20세기의 이탈리아의 극작가 겸 소설가로서 염세적인 작품 들을 남긴 근대 희곡의 혁신자], 다다이즘, 초현실주의, 부조리극의 선배 격이다.” (Berlin, 2021, p. 215) “이 모든 사조가 바로 이 작품에서 시작한 것이다” (Berlin, 2021, p. 215)
“자연스레 이와 유사성을 띤 정치적 신조들이 함께 등장한다. 낭만주의적인 정치 저술기들은 이렇게 말하기 시작한다. “국가는 기계가 아니다, 국가는 부속품이 아니다. 만약 국가가 기계였다면, 아마 사람들은 무언가 다른 것을 고려했을 텐데 그러지를 않는다. 국가는 자연 발생이거나, 혹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모종의 신학적 권위를 지닌 어떤 신비로운 원시적 힘의 발산이다.”” (Berlin, 2021, p. 215)
아이러니
아이러니는 [[Friedrich Schlegel|프리드리히 슐레겔]]이 고안한 개념이었다” (Berlin, 2021, p. 216)
“그가 보기에 죽음과 경직 그리고 모든 형태의 안정화와 동결된 인생 흐름에 맞서 싸우는 유일한 무기는 이른바 아이러니이다. 이것은 불투명한 개념이지만 전반적인 발상은 이렇다. 즉, 누구나 내뱉을 수 있는 모든 명제에 상응하여 적어도 원래 명제와 제각기 반대되는 다른 명제 세 개가 반드시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 세 명제는 제 각각 똑같이 다 참이고, 우리는 그 명제들 전부를 믿어야 한다. 특히 그 명제들이 모순적이기 때문에 더 그렇다.” (Berlin, 2021, p. 216)
이른바 18세기 중 반 이전까지 적어도 2 ,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모든 서구 사상의 심장부에 자리잡았던 “덕은 곧 지식이라고 하는 오래된 명제”, 소크라테스가 처음 명시적으로 선언했던 것으로서 플라톤과 기독교 전통에 공히 포함되어 왔던 이 명제에 심대한 피해를 입혔다. “그런 지식이 존재한다는 것, 바로 그것이 전체 서구 전통의 토대이며 낭만주의는 앞서 말한 바대로 바로 그 토대를 공격한 것이다.” (Berlin, 2021, p. 221) 이는 몽타쥬의 기본 개념 즉 예술을 통과하는 "지식"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비슷하지 않나 “이런 관점의 본질은 우리가 복종해야 하는 일군의 사실들이 있다는 것이다. 과학은 복종이다.” (Berlin, 2021, p. 221)
“낭만주의 운동은 이와는 정반대의 것들을 선포하는데 그것들을 다음 두 표제하에 정리할수 있을 것이다. 우선 하나의 표제는 지금쯤은 익숙해져 있을 것이다. 이른바 ==불굴의 의지==라는 개념이다.” (Berlin, 2021, p. 221)
“인간이 성취 해야 할 것은 가치에 대한 지식을 얻는 것이 아니라 가치를 창조하는 것이다.” (Berlin, 2021, p. 221) “예술가가 창조하기 전까지 예술 작품은 존재하지 않고 그 어디에도 없다. 복제도 없으며, 적응도 없고, 규칙의 학습 같은 것도 없다. 외적인 점검도 없고, 우리가 전진하기 전에 반드시 이해하고 적응해야 하는 구조 같은 것도 없다.” (Berlin, 2021, p. 222)
이것이 바로 [[Johann Gottlieb Fichte|피히테]]의 철학이고, 어느 정도는 [[Friedrich Wilhelm Joseph von Schelling|셸링]]의 철학이기도 하며, 실제로 우리 세기에 [[Sigmund Freud]] 같은 심리 학자들의 통찰이기도 하다. 이들은 어떤 환상이나 망상 덩어리에 사로 잡혀 있는 사람들의 우주가 다른 환상과 망상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의 우주와는 다르다고 주장한다.” (Berlin, 2021, p. 222)
==“두 번째 명제는 이른바 사물의 구조 같은 것은 없다는 것이다” (Berlin, 2021, p. 222)==
“우주의 끝없는 자기 창조만이 있을 뿐이다. 우주는 사실의 뭉치나 사건의 패턴이나 공간 속 덩어리의 모음 같은 것으로 여겨져서는 안 된다.” (Berlin, 2021, p. 222) “[[Arthur Schopenhauer|쇼펜하우어]]나 심지어 어느 정도는 [[Friedrich Nietzsche]]도 비슷하게 이야기한 바와 같이 우주는 인간 에게 적대적인 존재로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럴 때 우주는 자기를 방해하고, 자기를 체계화하고, 자기 안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자기 안에 본인들이 편히 쉴 수 있는 모종의 이늑한 양식을 구현하려 하는 인간의 모든 노력을 뒤엎어버릴 것이다.” (Berlin, 2021, p. 222-3) “세상 전체를 거대한 자기 조직적이고 자기 창의적인 과정으로 바라봄으로써, 마침내 지유로워질 것이다.” (Berlin, 2021, p. 223)
변화를 이해하는 일은 유일한 길인 이른바 신화라고 하는 상징들을 이용해서 어둡고, 비이성적이고, 표현불능의 것들을 심상안에 담음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이 보기에 그리스인들은 아폴론과 디오니소스라는 상징 덕에 삶을 이해했던 것이다” (Berlin, 2021, p. 225) “하지만 그리스의 이러한 심상들은 우리에게는 죽은 것들이다.” (Berlin, 2021, p. 225) “우리는 그리스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Berlin, 2021, p. 225-6)
“따라서 우리는 현대의 신화를 가져야 한다. 과학이 이미 다 죽여 버렸기 때문에, 아니 어쨌든 과학이 신화에 불길한 분위기를 조성해 놓았기 때문에, 현대의 신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우리가 그런 신화를 만들어야 한다.” (Berlin, 2021, p. 226) “그 신화들은 그 옛날의 신화가 그리스인에게 기여한 방식으로 우리에게 기여할 것이다.” (Berlin, 2021, p. 226)
“그의 형제 프리드리히는 이렇게 말했 다. “낭만주의의 예술이란 〔...〕 완벽성의 성취 없는 영속적인 생성을 의미한다. 어떤 것도 그 깊이를 측량하지 못한다. 그것만이 홀로 무한하며 홀로 자유롭다. 그것의 제일 법칙은 창조자의 의지, 법칙을 모르는 창조자의 의지인 것이다.”” (Berlin, 2021, p. 226)
“이것이 예를 들어《햄릿〉〉이나〈〈돈키호테》나 〈〈파우스트〉〉가 신화가 된 방식이다." “여기에는 저자 본인도 자신이 측량한 심연이 얼마 나 어두운 것인지 알수 없다는 가정이 깔려 있다. 모차르트는자신에게 영감을 준 천재성이 어떤 것인지 말할 수 없다. 실제로 그가 그런 것을 말할 수 있다면, 그의 천재성은 아마도 바로 그만큼 메마르게 될 것이다.” (Berlin, 2021, p. 227)
“낭만주의 운동의 정수에 해당하는 19세기 초 신화 창작 능력에 대한 매우 생생한 예증을 얻고 싶다면,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조반니〉의 이력이 안성맞춤이다.” (Berlin, 2021, p. 227)
“그가 끝내 개심하고 회개하지 않자 천둥소리가 들려오고 지옥의 힘이 그를 꿀꺽 집어삼킨다. 무대 위 연기가 사라지고 나면 남은 출연자들이,자기들은 살아서 행복한데 돈 조반니는 파멸한 것이 얼마나 근사한 일인지를 노래하는 아주 멋지고 짧은 6중창을 부른다” (Berlin, 2021, p. 227) “19세기의 대중은 모차르트의 가장 매혹적인 작품 중 하나로서 조금도 해롭지 않은 이 6중 창을 불경한 것으로 받아들였고,따라서 그 장면은 무대에서 상연되지 않았다. 이 곡을 유럽의 상연목록에 다시 포함시킨 사람은 내가 아는 한 19세기 말 혹은 20세기 초의 말러가 처음이었고, 지금은 일상적으로 연주된다.” (Berlin, 2021, p. 227) “〈돈 조반니〉가 이렇게 우리를 위압하는 거대한 신화로 승화되어 실재의 끔찍한 본성 중에서도 가장 심오하고 가장 표현 불가한 측면들을 전달하는 이야기로 해석되어야 했던 것은 확실히 오페라 대본작가의 생각 과는 아주 먼 것이었고, 아마 모차르트의 생각과도 아주 멀 것이다” (Berlin, 2021, p. 228)
“인류를 지배하는 거대한 심상들과 어두운 힘들과 무의식을 바라보는 이런 관점, 표현 불가능한 것들의 중요성과 그것을 차감하여 용납해야 할 필요성에 대한 이런 관점은 인간 활동의 전 영역으로 확산되며, 결코 예술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예를 들면 그것은 정치의 세계로 파고 들어 간다. 처음에는 버크Burke에게서 보듯 온건한 방식이다.” (Berlin, 2021, p. 229)
“버크의 독일인 사도인 아담 뭘러가 이런 생각을 가장 웅변적으로 표현한다. 그는 과학이란 오로지 생명 없는 정치적 국가만을 번식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죽음은 생명을 대신할 수 없으며, 정체가 운동을 대신할 수 없다(즉, 사회계약, 자유주의 국가, 특히 영국식 국가 등이 정체에 해당한다).” (Berlin, 2021, p. 229)
“국민의 물질적이고 정신적인 욕구 전체와물질적이고 정신적인 풍요 전체와 내적이고 외적인 삶 전체가 내밀하게 함께 묶여서 대단히 정력적이고 무한히 활동적이며 살아 있는 총체를 이룬 것이 국가인 것이다:” (Berlin, 2021, p. 230) “법은 민족 내부에서 박동하는 어돕고 전통적인 힘의 산물이자 나무를 뚫고 흐르듯 민족의 몸통을 뚫고 흐르는 유기적인 수액의 산물이다.” (Berlin, 2021, p. 230)
“같은 관점이 법의 영역에도 진입한다. 독일의 역사법학파에 따르면 참된 법이란 왕이나 의회 같은 기성의 권위가 어쩌다 가결하게 되는 그 런 것이 아니다. 그런 식의 입법은 단지 공리주의나 혹은 다른 어떤 경멸 할 만한 숙고의 과정이 인도하는 경험적 사건에 불과하다” (Berlin, 2021, p. 230)
“법은 전통에서 기인한 것이며 부분적으로는 환경의 문제지만 부분적으로는 민족의 내적 영혼의 문제로서 이제 민족은 거의 하나의 개체로 여겨지기 시작한다. 그런 것들 사이에서 민족의 구성원들이 법 을 생성하는 것이다. 참된 법은 전통적인 법이다. 모든 민족은 제 나름의 법이 있으며, 모든 민족은 제 나름의 형태를 띤다. 이 형태는 안개 낀 과 거로 멀리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그 뿌리는 어둠 속 어딘가에 박혀 있다.” (Berlin, 2021, p. 231)
“낭만주의 경제학은 이들과는 정반대이다. 모든 경제 제도는 영적으로 진보하는 방식의 공생이라고 하는 모종의 이상을 향해 마음을 쏟아야 한다. 무엇보다 우리는 외적인 법칙들이 존 재한다고 가정하는 실수를 저질러서는 안 된다.” (Berlin, 2021, p. 232)
“이런 측면에서 낭만주의자들은 진보적일 수도 있고 혹은 반동적일 수 도 있을 것이다. 프랑스 혁명 이후에 창건된 소위 혁명국가라 불릴 수 있는 급진적인 국가에서 낭만주의자들은 모종의 중세적 암흑의 귀환을 요청하는 반동들이었다.” (Berlin, 2021, p. 233) “낭만주의는 양쪽 형태 모두 취할 수가 있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혁명적 낭만주의자들과 반동적 낭만주의자들을 만나는 이유이다. 낭만주의를 특정한 정치적 관점으로 고정해 보려고 그렇게도 빈번하게 시도했음 에도 그것이 불가능했던 이유도 바로 그것이다.” (Berlin, 2021, p. 233)
“낭만주의의 근본 토대는 이런 것들이다. 의지, 사물에는 구조 같은 것 이 없다는 사실, 우리의 의지대로 사물에 틀을 부여할 수 있다는 사실(사 물들은오로지 우리가틀을 입히는그 활동을수행한 결과로서만존재하게 된 다는), 그리고 이와 더불어 실재에 굳이 모종의 형식이 들어 있다고 생각 하고 그 덕분에 실재를 연구하고 저술하고 학습하고 소통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다른 여러 측면에서 과학적인 방식으로 다뤄질 수 있다고 보는 모든 관점에 대한 반대도 포함된다.” (Berlin, 2021, p. 233)
“내가 한 번도 언급한 적이 없는 음악 분야 에서 가장 명확하게 나타났다. 18세기 초에서 시작하여 19세기 중반에 이르기까지 음악을 바라보는 태도의 발전을 관전하는 것은 흥미롭고 실제로 즐거운 일이다” (Berlin, 2021, p. 233) “특히 18세기 프랑스에서, 음악은 꽤 열등한 예술로 “간주된다. 성악은 말의 중요성을 부각하기 때문에 나름의 위치를 차지 한다. 종교음악은 종교가 자아내려는 분위기에 공헌하기 때문에 나름의 위치를 차지한다.” (Berlin, 2021, p. 233-34)
“슈베르트는 위대한 작곡가의 특징 은 거대한 영감의 전투에 휘말려서 비록 병시들이 전연 통제 불능의 방 식으로 맹렬히 날뛴다 하더라도 그렇게 폭풍우가 몰아치는 가운데서 냉 정함을 잃지 않고 부대를 지휘한다는 데에 있다고 말했다” (Berlin, 2021, p. 238)
영국에서 열정적으로 표출되었고 전체 "낭만주의 운동을 주도한 인물이 [[George Gordon Byron|바이런]]이었는데, 어떤 의미에서 19세기 초에 바이런주의는 낭만주의와 거의 동의어로 여겨질 정도였다” (Berlin, 2021, p. 239-40)
“샤토브리앙이 가장 잘 기술한 그런 유형의 인간이 그였음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샤토브리앙은 이렇게 말했다. “고대인은 저 비밀스런 불안, 억눌린 열정의 쓰라림, 함께 들끓어 오르는 온갖 동요를 거의 알지 못했다. 거대한 정치적 삶, 연무장이나 마르스 경기장에서 벌어지는 시합들, 포럼의 일거리(공공의 업 무)가 그들의 시간을 가득 채웠고 마음의 권태를 위한 자리는 남아 있지 않았다.” (Berlin, 2021, p. 240) “이것이 확실히 바이런이 처한 조건이었고 아마도 절반만 낭만 주의자였던 샤토브리앙이 그 점을 정확하게 묘사한 것이다.” (Berlin, 2021, p. 240)
“확실히 이것이 감정적이고실로 정치적인 19세기 세계에서 바이런이 취한 입장이다. 바이런이 주로 강조한 것은 불굴의 의지다. 주의주의라고 하는 철학 전반, 우월한 인간들이 지배하고 정복해야 하는 세계가 존 재한다는 관점의 철학 전반이 그에게서 발흥한 것이다.” (Berlin, 2021, p. 241) “위고 이래로 프랑스 낭만주의자들은 바이런의 사도이다.” (Berlin, 2021, p. 241)
“[[Johann Wolfgang von Goethe|괴테]]는 매우 애매한 낭만주의자였다” [...] “그의 영혼은 기존 세계를 담아내기에는 너무 컸다. 그가 가진 이상은 뜨겁게 전진하는 영속적인 운동의 필연성을 미리 전제로 한 것이었다. 문제는 기존 세계의 우둔함 과 상상력 없음과 지루함이 항시 이 운동에 제약을 가한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바이런 같은 사람들의 삶은 경멸에서 시작해 악덕으로 넘어가고 거기서 범죄와 공포와 절망으로 나아간다.” (Berlin, 2021, p. 242)
“바이런 증후군의 총체는 내가 해명하고자 애쓴 두 가지 가치에 대한 집착에 있다. 하나는 의지이고 다른 하나는 적응해야 하는 세계의 구조 같은 것은 없다는 생각이다.” (Berlin, 2021, p. 242)
“이 증후군은 바이런에게서 다른 사람들에게로, 라마르틴Lamartine, 빅토르 위고, 노디에 Nodier,프랑스의 낭만주의 자들 전반에게로 전이된다. 그리고 더 나아가 [[Arthur Schopenhauer|쇼펜하우어]]에 게까지 간다. 쇼펜하우어는 인간을 광대한 의지의 대양에 내던져진 한갓 연약한 나무껍질 같은 존재로 본다. 그 의지에는 목적도, 목표도, 방향도 없으며 인간은 오로지 위험을 감수하고서만 그것에 저항할 수 있을 뿐이다.” (Berlin, 2021, p. 242-3) “그 결과는 최후의 절멸이어야 한다. 라인의 강물이 불어올라 모든 인간을 감염시킨 이 폭력적이고, 혼란하고, 막을 수 없고, 치유 불가능한 질병을 수몰시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유럽에 서 벌어진 낭만주의 운동의 핵심이다.” (Berlin, 2021, p. 243)
“나는 표면적으로 낭만주의가 모든 문 제마다 어떤 견해를 주장하면서 그것의 반대 견해를 동시에 주장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을 입증하려 했다. 내가 옳다면,아마도 이 두 가지 원리 즉 의지의 필연성과 시물 구조의 결여가 내가 언급했던 규준 대부 분을 만족할 수 있으며, 매우 엄중해 보이는 모순들도 어쩌면 겉보기만 큼 그렇게 지나치게 극단적이지는 않다는 주장이 가능할 것이다.” (Berlin, 2021, p. 243) “그에 대한 답변 은 그 두 측면 모두 기존에 주어진 것의 본성을 깨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Berlin, 2021, p. 244)
“18세기에 우리는 극단적인 수준의 정교화를 얻는다. 우리는 형식과 규칙과 법률과 예의범절과 지극히 꼼꼼하게 잘 조직된 삶의 형식을 얻 는다. 예술에서건 정치에서건 다른 어떤 영역에서건 마찬가지이다. 바 로 이것을 파괴하는 것이라면, 이것을 날려버리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환영이다.” (Berlin, 2021, p. 244)
오늘날의 낭만주의
“마지막으로, 낭만주의가 오늘날에 미친 영향에 관해 뭔가 이야기를 해야겠다. 낭만주의는 비록 역풍을 맞아 그 위력이 어지간히 누그러지긴 했으나 확실히 매우 방대한 영향을 미쳤다” (Berlin, 2021, p. 250) “낭만주의는 인간 실존의 특정한 측면들, 특히 인간적 삶의 내향적인 측면 이 존재하며 그런 측면이 총체적으로 버려지는 바람에 전반적인 그림 이 매우 난폭한 수준으로 왜곡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Berlin, 2021, p. 250) “내가 보기에 실존주의 [[existentialism]]는 낭만주의의 가장 진실한 상속자이기 때문이다.” (Berlin, 2021, p. 250)
“실제로 낭만주의는 정서주의 나 파시즘에 각기 깊은 영향을 미쳤다.” (Berlin, 2021, p. 250)
“우리는 의지이고 칸트적인 혹은 피히테적인 의미에서 자유 로운 존재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동기가 결과보다 더 중시된다. 결과는 통제할 수 없지만 동기는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Berlin, 2021, p. 251)
==“모든 덕 중에서도 가장 위대 한 덕은 실존주의자가 진정성이라고 부르고 낭만주의자가 진실성이라 고 부른 바로 그것이다” (Berlin, 2021, p. 251)== “충분히 고결한 인간이라면, 그리고 제단 앞에 자신을 희생시킬 준비가 되어 있는 인간이라면 그 누구든지 뭐가 어찌되었든 존중할 만한 가치가 있는 도덕적 인격의 소유자이다.” (Berlin, 2021, p. 251) “낭만주의가 한 일은 가치, 정치, 도덕, 미학의 문제에서 사람 들 사이에 작동하는 객관적 규준이 존재하며 그런 규준을 사용하지 않 는 사람은 누구나 거짓말쟁이거나 미친 사람일 뿐이라고 하는 생각 전 반을 뒤흔든 것이었다.” (Berlin, 2021, p. 252)
“따라서 우리는 두 세계의 아이들이다. 우리는 일정 정도 낭만주의의 상속자이다” (Berlin, 2021, p. 253) “실존주의의 중심적인 설교는 본질적으로 낭만주의적 인 것으로서 이른바 세상에는 기댈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Berlin, 2021, p. 254)
“심지어 이렇게 말할 때도 있다. 나는 부분적으로 무의식적인 측면이 있어, 나는 무의식적인 충동의 산물이야, 나는 어쩔 수가 없어, 나는 콤플렉스가 있어, 그것은 내 잘못이 아니야, 나는 이끌려 간 거야, 오늘날 내가 지금의 이 괴물이 되어 있는 것은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불친절했기 때문이야. 실존주의에 따르면 이런 말들은(이에 관해서는 실존주의가 아마도 옳을 것이다) 비굴하게 비위를 맞추거나, 혹은 자기가 전적으로 자유롭게 실행할 수 있었던 행위들에 대한 책임의 무게를 객관적인 무엇 에게로 전가함으로써 동정을 얻으려는 시도일 뿐이다.” (Berlin, 2021, p. 255)
“[[Jean-Paul Sartre]]가 [[Johann Gottlieb Fichte|피히테]]의 관점을 되풀이하고 [[Immanuel Kant|칸트]]의 견해를 되풀이한 데에는 합당한 이유가 있다.” (Berlin, 2021, p. 256) “그들은 우주의 형이상학적 구조라고 하는 바로 그 개념과 신학이나 형이상학이라고 하는 바로 그 개념을 거부한다. 그들은 특정 사물들에 본질이란 것이 있다고 말하려는 시도(이는 사물들이 지금 그대로의 모습을 하고 있는것이 마 땅히 필연임을 의미한다), 우리가 도달한 세계는 변경할 수 없는 특정 구 조를 갖고 있다고 말하려는 시도를 거부한다.” (Berlin, 2021, p. 256)
“우리가 만든 것을 만든 책임은 우리에게 있으므로 우리는 책임 의 경감을 탄원할 수 없다. 모든 변명은 거짓이며 모든 설명은 발뺌에 불과하다. 현실을 회피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직시할 만큼 용감하고 비극 적인 사람이라면 이런 사실을 직시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이것은 실존주의가 내놓은 스토아풍의 설교로서, 직접적으로는 낭만주의에서 끄집어낸 발상이다.” (Berlin, 2021, p. 257)
“뭔가 이와 비슷한 생각이 니체의 마음속에서도 끓어오르고 있었다. [[Friedrich Nietzsche|니체]]는 훨씬 더 뛰어난 사상가였지만 어떤 측면에서는 슈티르너와 비숫하다.” (Berlin, 2021, p. 259)
“공통의 가치관이 존재 하는 만큼, 내가 모든 것을 창조해야 한다고 말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무언가 주어진 것이 눈에 띄면 박살내야 한다고 말하거나, 무언가 구조가 있는 것이 눈에 띄면 고삐 풀린 상상력에 활동의 자유를 부여 하기 위해 파괴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Berlin, 2021, p. 259) “이런 측면에서 낭만주의가자체의 논리적 귀결로 내몰리게 되면 실제로 모종의 광기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Berlin, 2021, p. 259)
==“우리는 낭만주의에 무엇을 신세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주 많다. 우리는 낭만주의에 예술가의 자유라는 개념을 빚졌고, 예술가도 일반적인 인간도 결코 과도하게 단순화한 관점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존재들이라 는 사실을 빚졌다.” (Berlin, 2021, p. 261)==
“인간사께서 획일적인 답변은 파멸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도 낭만주의에 빚진 것이다.” (Berlin, 2021, p. 261) “그렇다면 낭만주의의 결과는 자유주의, 관용, 품위, 그리고 삶의 불완 전성에 대한 자각이자 일정 수준 고양된 이성적 자기이해이다.” (Berlin, 2021, p. 264) “어떤 한목표를 겨냥했던 그들은, 우리 모두에게는 다행스럽게도, 거의 정반대의 결과를 산출했던 것이다.” (Berlin, 2021, p. 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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